우리는 압박을 싫어한다. 그래서 해야될 일과 하고싶은 일이 있을 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해야될 일을 맡긴 후일을 맡기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해버린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 같으면 내일부터 해야지 하고서는 오늘은 인터넷 서핑을 하고 노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지금 압박감에서 도망쳐버린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 ‘미래의 나’가 해야될 시기가 오면, 우리는 또다시 한번 더 미루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의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자아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해야 할 일을 미뤘지만, 정작 다가오면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다가 최후의 순간에 와서야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난 이것을 막는 장치로서 난 이전 칼럼에서 ‘자기제어장치’를 소개했다. 자기제어장치란 시간이 흘러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가 되었을 때, 일을 미루지 못하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안철수 교수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미리 해버리겠다고 공언을 함으로써 ‘미래의 나’가 그 약속을 지키도록 했다.
하지만 난 그 칼럼에서는 ‘이런 자기제어장치’가 있고 자신을 잘 파악하여 만들면 된다고만 말을 했을 뿐이었지, 어떻게 구체적으로 자기제어장치를 만들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기제어장치를 만들 수 있을지, 그 실전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사실 자기제어장치는 나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 난 이미 수능을 치고 대학까지 졸업한 대학원생;;;이 되었지만,그렇기에 오히려 자기제어장치가 더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고등학교 때는 감독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하루의 80% 를 차지한다. 그에 따라 내 자신을 컨트롤 해야 할 책임은 더 커졌다. 그래서 난 더욱 확실하고 효과적인 자기제어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번 글은 그 심사숙고의 결과다.
자기제어장치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하고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좋지 않은 것을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이를 ‘억제적 자기제어장치’ 라 부른다.
둘째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하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이를 ‘강제적 자기제어장치’라 부른다.
이 두가지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1)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경우 : 억제적 자기제어장치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괴물로서, 상반신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하반신은 새의 형상을 띠고 있다. 그녀는 시칠리아섬 근처의 작은 섬에 살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유인하여 파멸시켰다고 했다.
트로이전쟁 후 귀국길에 오른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이 있는 곳을 지나쳐야만 했다. 오디세우스는 이때 꾀를 부려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도록 하고, 자신은 배를 돛대에 묶어 놓게 했다. 사이렌이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을 때 부하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묶인 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배는 그 유혹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미래의 나’가 노래를 듣고 미쳐서 유혹에 빠지고 싶은 상황을 예상하여, ‘현재의 나’가 돛대에 포박을 해놓도록 자기제어장치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억제적 자기제어장치의 대표적인 예이다.
자, 그리스 신화 때에서 지금으로 시간을 돌려서 실생활로 옮겨와보자. 우리 생활에서 이런 자기제어장치가 필요한 유혹거리는 무엇이 있을까? mp3, TV, 컴퓨터, 핸드폰 게임, 친구와의 수다, 라디오 듣기, 팬픽(?), 잠 등등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는 남는 게 없어 후회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일단 나같은 경우는 이런 것들에서 자기제어 장치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그리고 여기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집에 오면 잠옷을 입지 않는다.
잠옷을 입으면 몸이 나른해지고 자고싶어진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다.
-침대가 없는 곳에서 공부한다.
침대를 보면 자고싶어지고 쉬고싶어진다. 그 유혹을 참고 계속 공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그래서 아예 난 침대가 없는 곳에서 공부한다. 공부해야 할 때가 되면 침대가 없는 방에 가거나,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서 한다.
-컴퓨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공부한다.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를 키고 싶고 컴퓨터가 켜져 있으면 괜히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싶어진다. 아예 없는 곳으로 가서 공부한다. 컴퓨터를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둬야 하는 경우(=프로그래밍 과제 같은 거 할 때)에는 인터넷 선을 뽑아버렸다.
이런 방법은 현재까지 쓰인다. 현재 난 연구실에서 지금 컴퓨터를 앞에 두고 하루종일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여간 큰 곤혹이 아니다. 그럴 때는 컴퓨터 전원을 끄고 마우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우고 키보드를 뒤집어 놓는다. 키보드나 마우스가 보이면 괜히 조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mp3를 가져가지 않는다. 핸드폰은 꺼놓는다.
현재의 나는 mp3를 가져가서 적절히 자제하면서 들어야지 하고 희망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나는 절제를 못하고 계속 좋아하는 음악만 들으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핸드폰 역시 필요할 때만 써야지 생각했지만, 갑자기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면 친구에게 문자를 한다. 그래서 난 공부를 할 때는 mp3를 가져가지 않고, 핸드폰은 아예 꺼놓은 다음에 가방 속에 넣어놓는다.
이런 억제적 자기제어장치의 주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마음은 원하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흔히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곧바로 행동해서’ 그렇다. 오디세우스가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삘 받은 대로 사이렌에게 갔다면 오디세우스는 조금은 초라한 영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침대가 앞에 있는 대로 삘받아서 잠을 자버리면 낮잠을 너무 많이 자서 시차가 바뀌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괴로운 하루를 보내기 쉽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우리의 지각범위 바깥으로 떠미는 것, 그것이 자기제어장치의 시작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 포인트가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우리가 공부에 수도없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기자신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에서도 공부 잘할 것 같다고? 적절히 TV보면서도 공부 잘할 것 같다고? 컴퓨터 하면서도 공부 잘할 것 같다고? 현재의 나는 매번 그렇게 믿고 공부를 시작하지만 미래의 나는 허구헌날 그 유혹에 넘어가버리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희망을 품지 않고 만약 유혹과의 접촉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면 그것은 훌륭한 자기제어장치가 된다.
2) 뭔가를 해야만 하도록 제어하는 경우 : 강제적 자기제어장치
흥미로운 사례, 당신도 놀랄 만한 사례를 하나 말해주겠다.
당신은 혼자 있을 때 밥을 더 많이 먹는가, 아니면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밥을 더 많이 먹는가? 음...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위장의 크기는 정해져 있으니 밥 먹는 양은 혼자 먹을 때나 둘이 먹을 때 똑같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많을수록 밥을 먹는 양이 더 많아진다. 특히 4명 이상과 함께 먹을 때는 혼자 먹을 때보다 무려 96%나 많은 양을 먹는다. 거의 두배 가까이 먹는 것이다!
이건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우리의 신체기관은 생존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필요할 때에 최대한 많이 먹도록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 혼자 밥을 먹을 때에는 먹을 양이 경쟁자에 의해 위협당할 일이 없기에, 많이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일정한 음식물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최대한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더 많이 먹은 것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유추해보면 공부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아마 실험을 해보면 입증이 되겠지만,내 경험으로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부할 때 더 오랜 시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노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독이 되겠지만) 아마 경쟁자가 눈 앞에 있고 이 사람 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많이 했을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 역시 공부를 할 때는 반드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내 기숙사 방에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침대는 있다) 공부가 잘 안된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스터디룸에 가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된다. 그곳의 학구적인 분위기가 나를 자극해서 더욱 공부를 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도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공부를 하길 바란다. 실제로 이렇게 하면 본능적으로 경쟁심이 생기는데, 이 경쟁심은 나쁘게 작용하지 않고, 여러분의 잠재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학원을 다니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것이다. 학원에 가면 더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 감이 오는 것 같은가?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에 언급했던 안철수 교수의 사례를 다시 가져온다. 좋은 사례라서 다시 봐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못믿는다. 그냥 놔두면 얼마나 풀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안다. 반면 난 책임감은 굉장히 강하다. 난 이 점을 이용해서 나를 풀어지지 않게 만든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최신 컴퓨터 정보, 최신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 때 썼던 수법이 있다. 미리 잡지사에 전화를 하여 (자신이 모르는 ) 새로운 이슈가 되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쓴다고 무작정 약속을 해 버린다. 그 후 그 약속을 지키려고 고생고생해서 글을 쓰고 나면, 그 분야에 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 수준이 된다. 즉, 미리 대외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뭔가를 강제로 하게 하기 위한 좋은 자기제어장치는 사회집단의 압박을 이용하면 좋다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가 미리 원고를 쓰겠다고 약속을 공포하는 것도, 안창영 공신이 도전 과제를 한 것 또한 이런 것을 활용한 것이다.
이런 것과 비슷한 미국의 한 TV프로그램도 있다. 그곳에서는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집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살 찐 (벌거벗은) 모습을 촬영한 뒤, 앞으로 3개월 안에 살을 못빼면 지금 찍은 이 모습을 TV로 공개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쪽팔려서 악착같이 살을 뺀다.
위 사례는 사회적 압박이 얼마나 강력한 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시사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나태해지지 않게 하고 의지력과 실천력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적용하면 좋겠는가? 한가지 예를 들자면 담임 선생님께 가서 공포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 기말고사 때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기로 약속한다고 말이다. 만약 들지 못하면 매를 맞거나 성적을 공개하겠다고 말이다. 실제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랬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구? 비밀이다. ^^
여기까지 두가지 자기제어장치를 설명했다. 이 자기제어장치들은 비인간적이고 차갑게 보일 수도 있다. 공부만을 하게 하고,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난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서 멋진 성과를 낼 때 진정으로 뿌듯함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인간다움이다. 오히려 원하는 일만 하고 퇴보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이지 못하다. 골방에 갇혀서 잠만 자고 매일 게임만 하는 것이 과연 인간적일까? 난 그런 상태일 때 삶이 마치 엉망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나와 당신은 똑같은 인간이기에 다르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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