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리메이크

놀이터 2011. 2. 14. 21:05
원작: 최인훈 - 광장




<전략>

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 자들이 앉아 있고, 수험생은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고려대 교수와, 고잠을 입은 총학 대표가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교수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학생,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은 어느 쪽으로 가겠소?”
“서울대.”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교수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학생, 서울대도, 마찬가지 취업난을 겪는 학교요. 로스쿨과 행시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서울대.”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서울대.”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교수가 나앉는다.
“학생, 지금 고려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했소. 학생은 누구보다도 먼저 등록금을 받게 될 것이며, 안암의 수석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학우들은 학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고려대의 호랑이도 학생의 입학을 반길 거요.”
“서울대.”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교수가, 다시 입을 연다.
“학생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수험 생활에서, 진학부장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고려대는 학생의 하향지원을 탓하기보다도, 학생이 입학처에 바친 원서비를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학점은 없을 것을 약속하오. 학생은……”
“서울대.”
총학 대표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교수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명준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수험생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 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세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신촌이군.”
설득 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서울대라 지만 막연한 얘기요. 제 집 근처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관악에 가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밖에 나가 봐야 신촌이 좋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연세대학교가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연대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수험 생활과 잉여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서울대.”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신촌에 사는 한사람이, 타향 수십리 다른 구에 가겠다고 나서서, 이웃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 연대 수만명 학생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독수리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서울대.”
“당신은 올 1등급까지 받은 괴수입니다. 연대는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폭발해 버린 연대를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서울대.”
“괴수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군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폭발이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스나이퍼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신촌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대학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학번이 약간 더 빠르다는 의미에서, 선배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독수리의 품으로 들어와서, 연대를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낯선 관악산에 가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연대에 오는 경우에, 개인적으로 술을 사줄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명준은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서울대.”
설득 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이대생을 돌아볼 것이다. 이대생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후략>


보는 도중에는 웃다가 다 보고 나면 심각해지는 (유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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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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