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길의 발자국

monologue 2011. 2. 25. 23:52
당나라의 승려 감진은 집집마다 동냥하러 다니는 것이 지겨워져
하루는 한낮이 되도록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주지승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주지승은 그의 방에 들어왔다가
이불 옆에 놓인 수십 켤레의 신발을 보고 물었습니다.
“이 낡은 신발들은 왜 쌓아 둔 것이냐?”
“다른 이들은 일 년이 지나도록 신발 하나 닳지 않는데
저는 일 년 만에 이렇게 많은 신발이 해졌습니다.”

주지승은 감진의 말에 그의 불만을 눈치채고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비가 많이 내렸더구나. 나와 함께 절 앞에 나가 보자.”
감진은 갑작스러운 주지승의 말에 놀랐지만, 순순히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간밤의 비로 절 앞 길은 진흙탕으로 변해 질퍽거렸습니다.
그것을 본 주지승은 질퍽거리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진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이 길을 지나왔겠지. 지금 여기서 너의 발자국을 찾을 수 있겠느냐?”
“어제는 길이 질퍽거리지 않아서 발자국이 남지 않았습니다.”
감진의 대답에 주지승은 진흙탕에서 몇 걸음 걸은 뒤 말했습니다.
“그럼 지금 내 발자국은 찾을 수 있겠느냐?”
“당연하죠.”
감진의 말에 주지승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처럼 진흙길이어야 발자국이 남는다.
한평생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은 사람은 마른땅을 밟은 것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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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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