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더 잘게" vs  "좀만 더 있다가 잘게">

6시 30분입니다. 오늘도 엄마가 깨웁니다. 
"5분만 더 잘게"
5분 뒤에 엄마가 또 깨우러 옵니다.
다시 요청합니다.
"5분만 더 잘게.."
하지만 엄마는 얄짤 없습니다. 창문을 열어놓고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합니다.
할 수 없이 씻고 밥을 먹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옵니다.
너무나도 피곤하지만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켭니다.
네이트온을 틀고 인터넷 기사를 보고 웃긴 자료들을 낄낄거리며 보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많이 가 있습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일찍 자렴"
하지만 "조금만 더 보다가 알아서 잘게" 하고 말하면서 새벽 1,2시까지 버팁니다.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침대로 다이빙해서 잡니다.

그리고 다음날 또 수면부족에 시달립니다.





<왜 그런가?>


이건 여러분의 얘기가 아닙니다.
상황만 조금 다르지, 제 얘기입니다.
전 이런 상황이 신기했습니다.

만약 인간이 어느정도 졸리면 무조건 자러 가는 존재라면,
절대 밤 늦게까지 컴퓨터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의지력으로 자는 것을 깰 수 있다면
절대 아침에 그렇게 일어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아침에는 일어나야 하는데도 일어나지 못하며,
밤에는 자야 하는데도 자러 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뭐 이것은 태음인 소음인 소양인 등 체질적 차이에서 온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 이런 현상이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이 점이 군대를 가면 모두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 가지 않았지만)
군대를 가면 자야 할 때 자고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무리 저녁형 인간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이런 현상이 선천적인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정답은 하나였습니다.

아침에는 제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데도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밤에는 제 시간에 자야 하는데도 자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관성'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죠.

계속 자고 있었으니까 아침이 되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고
계속 깨어 있었으니까 밤에는 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는 이런 것을 타율에 의해서 자게 하고 일어나는 시간을 억지로 정해놓으니까 저절로 습관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대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침 그 기상 나팔 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이런 관성의 현상은 비단 자고 일어나는 것만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흥미를 끌기 위해 넣은 아주 단적인 예시일 뿐입니다. 사례는 무궁무진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중독자들은 하루종일 게임을 합니다.
설령 자신이 파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컴퓨터를 끄기 쉽지 않습니다.
폭식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폭식하면 몸이 더 안좋아진다는 점을 알면서도
음식을 끊으려 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관성이 설령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왜' 관성을 유지하느냐가 아닙니다.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알아내더라도 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Truth but Useless)
사실 문제를 이해하는 것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전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풀 때는 문제를 철저히 이해하고 분석하면 해결책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어렸을 때 부모님께 학대당한 기억 때문에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학대당한 기억을 후벼판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잖아요? ^^

중요한 것은  '문제점의 분석'이 아니라 '해결책'입니다.
'어떻게' 하면 관성을 깨고 올바른 상태로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의지력의 문제인가?>



이런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의지력의 문제야. 정신력이 글러먹었어. 정신 똑바로 차려. 나이값좀 하고. 군대를 다녀와야겠다."

하고서는 독설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그렇게 독설을 날리고 채찍질 하는 것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의지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꿈을 생각하세요. 꿈이 없어서 그래요."

글쎄요.......ㅋㅋ
전 꿈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노력을 안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봐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멋진 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현실에서는 노력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싫다며 자책을 합니다.
꿈의 유무로 결정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해결책일까요?




<사랑>


제가 알아낸 것은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엥??? 쌩뚱맞게 무슨 사랑이냐구요?
너무 추상적이고 듣기 좋은 소리라구요?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기연민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죠.
의외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비판적입니다.

"난 왜이러지? 왜 이렇게 운동을 안하지?"  
"문제가 안풀리네. 난 어차피 안될 놈이야" 
"에라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우리는 이걸 겸손하기 위함, 자신에게 엄격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죠.. 
자책입니다. 자신에게 채찍질하고 꾸짖는 것이죠.
이런 자책이 생기는 이유는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대충 삶을 살아버릴까봐(=방종) 두려워서 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교육자들(부모님 포함)이 이런 방식으로 학생을 교육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채찍질' 자체가 오히려 우리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대충 살게 만듭니다.
폭식자들은 자신을 소중하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살이 찌도록 놔두는 것입니다.
만약 폭식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면 자신을 걱정하게 될 것이고,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밤늦게까지 컴퓨터로 잉여짓을 하다 늦게서야 잠에 이루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내버려두게 되는 것입니다.

엄격한 자기절제로는 절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해결한다 하더라도 아주 단기적인 해결일 뿐입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이루어진 한 심리학 실험에서는 84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도넛을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그 때 자기연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적절한 양을 먹은 반면,
죄책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감정적인 식사에 휩쓸리는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해결책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밤늦게 컴퓨터를 하더라도
"미래의 나를 위해서 잠을 자야지" 하고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공부가 하기 싫을 때도
"나 자신을 사랑하니까 나를 위한 공부를 해야지" 하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책하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습관을 바꿔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1)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첫번째 방법은...
다음 동영상을 보십시오..^^





2)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두번째 방법은...한 강연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저도 우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우울증은 저에 대한 비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창의력이 있는 것일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신이 창의성 없는 증거,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증거만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면을 부정적으로 파고들어 해결책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심화되면 자살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습관'입니다. 자신을 비관적으로 보는 습관입니다.
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랜 기간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우연히 법륜 스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앞에 바다가 있다고 하자.
그 바다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 바다가 색깔이 왜 이러냐고 하며 불평하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불행해진다.
이 와중에 바다는 가만히 있는다. 결국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것은 굉장히 심오한 심리학적 얘기입니다.
우리를 기분 나쁘고 불행하도록 결정하는 것은
 '밖에 있는 세상'이 아니라 
그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남에게서 사랑을 구하면 사랑이 부족해진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사랑받기 전에 사랑하라.
베풂을 받기 전에 베풀어라.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이해해라.
이 모든 과정은 희생이 아니다.
희생은 나중에 뭔가 대가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면 우리가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것이 왜 희생이겠는가?
그것이 희생이라면 왜 모든 종교에서 사랑하라고 하겠는가?
사랑은 보상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금 자신이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사랑하지 못한다.
그것은 '천성' 때문에 아니라 '습관' 때문이다.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이 습관을 고치면 된다.
이 습관을 불교에서는 '업'이라고 표현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습관을 고쳐나가는 것을 '수행'이라고 한다.
이 수행을 계속 한다면 
명상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기도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종교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어떤 조건이 없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능동적입니다.
아무리 사랑이 없고 불행했었더라도,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한번에 바뀌지 않아도 됩니다.
평생 해나가는 '수련'입니다.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을 실패자로, 패배자로 낙인찍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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