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년 11월 18일 12:08
어제 스트레스를 좀 받는 일이 생겨서 낮에 수영장에 가서
한 1km정도 수영을 했더니 몸이 피곤했는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6시에 일어났다가 결국 뻗어버렸다.
큰일이다.
워크샵 이후 달라지려고 했지만 그 각오가 다시 사라지고 있다.
안된다.
빨리 회사로 나가자.
오늘 수능이라서 회사가 바쁠텐데....
가면서 공신닷컴에 올라온 글들을 봐야겠다 싶어서 아이폰을 꺼냈다.
일단 자유게시판으로 갔다.
이상하다.
가장 윗글(가장 새 글)에 한 회원이 쓴 글이 있다.
이 아이 분명히 재수생인데...
지금 이 글을 쓸리가 없는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클릭을 했는데 아뿔싸...
10월에 생일이라고 글 썼는데 축하한다는 말과 격려말을 해주지 못해서
내심 미안한 생각으로 있던 아이였는데...
그런 미안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이 아이의 지금이 9년전의 나와 오버랩 되면서
먼저 이런 감정을 겪은 선배로써 도움이 못 된 것 같은 감정이 온 몸을 감싼다.
그리고 다시 생각나는 9년 전의 기억.
#2. 2001년 11월 7일 19:00
시험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 지금쯤이면 인터넷으로 가채점을 할 수 있도록 정답이 나왔을 것이다.
야후에 들어가서(그 때는 야후가 지금의 네이버 같은 존재) "수능 정답"을 쳤다.
수능을 보고 나오면서 언어를 본 다음에 조금 혼란스러운 느낌은 있었지만
다행히 그 기분을 잊은채로 수리랑 수탐2(지금의 사탐과 과탐을 합친 영역)을 봤고,
외국어도 듣기가 거지 같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듣기 1문제는 찍었지만 그 정도야 하면서 나왔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난리다.
직전 수능에 비해서 급상승한 난이도 탓에 예측이 안된다는 말이 많았다.
그랬다.
분명히 작년 수능에 비해서 어려웠다.
1년 동안 봤던 어떤 시험보다 어려웠다.
단 한 번도 어려운 수능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9월 대성 모의고사
10월 대성 모의고사
10월 중앙 모의고사
평가원 모의가 없던 시절에 9월과 10월의 사설 모의는 마지막 담금질의 기회였다.
그리고 저 3번의 모의고사에서
단 한 번도 5점 이상의 감점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분명히 쉬웠다고는해도,
기출인 2001학년도 수능.
만점자가 전국에서 66명이 나왔던 시험에서 고2 때 봤을 때, 398점.
고3때 봤을 때는 399점이었다.
고3 1년 동안 작년에 비해서 조금 어렵다는 난이도에 맞게 설계된 모의고사를 치뤘고,
그런 수능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작년이랑 비교하면 평균이 40점 정도의 하락이 예상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1교시가 끝나고 자살한 학생이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1교시 언어영역의 정답을 보면서 수험표 뒷면에 적어온 답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96점.
100점 만점인 지금과 다르게 120점 만점 시절이다.
언어가 120, 수리가 80, 수탐2(사탐 48, 과탐 72, 윤리 국사 일반사회 한지 12점씩, 공통과학 4과목 각 12점, 과탐 선택 24점), 외국어 80.
이렇던 시절이다.
그런데..
96점.
이건 말이 안된다.
내가 언어를 좀 못하긴했지만
지금 이건 너무 말이 안되는 점수다.
2교시 수리영역
다행이다.
이건 다 맞았다.
3교시 수탐2.
사탐이 앞부분이라 매기는데 난리가 아니다.
역시나 못하는 국사에서 대거 점수가 깎였다.
거기다가 간신히 모의고사를 버텨오던 윤리에서도 틀렸다.
사탐에서만 12점 감점.
과탐을 매길 엄두조차 나지 않는 감점 수준이다.
다행히 과탐은 1점 감점으로 끝이 났다.
선택과목에서 터무니 없는 실수를 했다.
4교시 외국어영역
역시나 틀릴 것이라 생각했던 듣기에서 틀렸다.
2점 감점.
총점 361점.
마지막 모의고사에 비하면 38점이나 떨어졌다.
보통 어려운 시험에서 감점은 상위권 학생들은 평균 이하로 감점되고,
하위권에서 평균 이상 감점되는 것을 감안하면 많이 떨어진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하다.
이를 어쩌나 싶다.
오늘 엄마는 수능 고사장 밖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질 않고
아픈 무릎을 감싸쥐면서 절에 가서 2000배를 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기고 있는 동안 밖에 있던 엄마한테 점수를 얘기했다.
충격이 큰 모양이다.
어제 수능 전날이라고 특별히 공부할 것이 없다고 거만하게 생각해서
국사책 상,하 2권이랑 국어사전을 가져와서 맞춤범 공부만 했는데...
거만했던 덕을 보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에 출장을 간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한테서 점수를 들은 아버지는 충격이 컸지만.
일단 내일 학교 가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역시나 미안한 감정은 끝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결국 화가 난 나머지.
이 점수를 가지고 무슨 대학에 가느냐고 바로 재수학원에 등록하라고 화를 내시고는
머리를 싸매고 자리를 펴고 누우셨다.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의 전화가 오는 것을 받지 않기 위해서,
아예 전화벨도 울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 전화코드마저 뽑아버리고 방에 들어가셨다.
절망적이다.
수능을 앞두고 연이은 모의고사의 고득점이 방심을 낳았나...
아니면 정말 공부할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닐텐데...
억울했다.
그 동안 정말 노력했는데..
공부를 누구보다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나보다 노력한 사람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는데...
억울했다.
다시 오늘 수능 문제들을 인쇄해서 풀어봤다.
언어 104점
수리 80점
수탐2 112점
외국어는 풀지 않았다.
빌어먹을.
평소에 시험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긴장에 얼었나보다.
언어는 다시 보니까 푼 기억은 나지도 않았으면서도 8점이나 올랐다.
수탐2도 5점 상승..
이 정도면 그나마 후회는 없을 점수였다.
난 그렇게..
지금 2010년 11월 19일 02시의 수험생들의 심정으로.
2001년 11월 8일 02시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3. 2010년 11월 18일 14:33
"실장님, 수리영역 19 나왔어요."
사무실에서 룰루랄라하면서 뉴스들을 보고 있는 내게 고영건 공신님이 한 말이다.
공신닷컴 본부에서 가장 순수한 고영건 공신님은 본부의 분위기 메이커인데,
강성태 공신님이 지난 금요일에 촬영해서 올린 수리영역 주관식 정답 예측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었다.
뭐 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안 나온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혼자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 회사 앞 까페에 갔다.
일이 안될 때 자주 가서 있는 곳이다.
갔더니 벌써 소문이 나있었다.
"대표님이 예측하신 주관식 답이 진짜로 나왔다면서요. 축하해요~"
"네 감사합니다."
축하라..
축하 받을 일인가..
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난 수능 격려 영상이나 만화 중에서 이 만화를 가장 좋아한다.
너만 잘봐라.
분명히 우리 사이트 들어와서
글 자주 보는 애고,
우리를 믿는 학생들이라면 분명히 19를 찍었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25번이니까 4점짜리일테니까 도움이 되었겠지.
분명히 단순히 찍은 것은 아니다.
몸살 기운이 있으면서,
회사일에 치이고,
집에도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그 바쁜 와중에 계속 수리영역 주관식 답들을 분석하고
최대한의 규칙성을 찾고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강성태 공신이다.
존경하는 선배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생의 동지이기에,
기쁨도 컸지만,
그만큼 이것이 맞아떨어진 현실도 찝찝했다.
강성태 공신이 2006년 공신을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자신이 꼭 공부법에서는 한국 최고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온갖 공부법 글을 보고, 책을 보고, 분석하고, 분석하고 공부법 이론을 생각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겪으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난 정답이 맞은 것이 슬프기보다...
평가원이 우리가 생각한 로직대로 움직였던 것이 좀 서글펐다.
이번에는 우리의 분석이 맞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사이트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조회수 2000에서 시작했던 강성태 공신의 수리영역 정답 예측 글은 이미 조회수 7000을 넘었다.
그리고 임베디드 된 네이버 플레이어의 재생 수는 50000이 넘었다.
평가원이 가지고 있는 로직이 우리의 분석이 들어맞을만큼 약한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분석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내년 요맘때가 아찔해진다.
모든 인강사이트에서 이런 정답 예측을 하면?
그리고 그런 정답 예측 강의는 분명히 학생들이 사게 되어 있다.
그것은 과연 옳은가?
오늘 우리가 겪은 이 경험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 고민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머리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번 한 인강사이트에서 한 외국어 강사가 EBS해설강의를 했을 때,
난 쌍욕을 했었다.
그냥 해설을 읽어주는 정도 밖에 안되는 강의로 돈을 받아 먹는 장사치의 수단에
치를 떨면서 분노하기도 했다.
물론 저것이 업계 2위 사이트의 외국어영역 강사가 할 수 있는 네거티브 마케팅이라고 생각햇지만.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 강의를 봤던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궁금한 나머지 나도 결제를 해서 봤으니까..
이것은 과연 옳은가.
사실 지금 우리가 정답을 예측했고,
그 정답이 적중한 것은.
물론 학생들의 정보력 싸움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지만,
엄중히 따져 평가원의 문제 출제 로직 자체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큰 이슈가 되어야 하고,
평가원의 무능력함이 문제제기가 되어야 한다.
오늘 기자인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내가 너한테 제보를 하면 어떻게 되는거야?"
물론 그러고선 수능 시험 문제를 풀어보느라 결국 그 후배의 전화를 받지는 못 했다.
평가원의 로직은,
예측이 불가능해야 한다.
특히 문제의 출제경향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답안의 정렬 혹은 배치 경향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2011학년도 수능을 바라본 나의 수능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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