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일단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공신닷컴 회원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모든 수험생들,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자게에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목부터 '잔인'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고,

본문은 딱 두 줄이었는데 바로 공감이 되고 너무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로 제가 1년 전에 그 상황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재수를 했는데도 현역 때보다 성적이 떨어진 상황.....

얻은 건 나이 한 살뿐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 절대 이해 못 합니다.

'마냥' 잘 될거라는 생각은 아니어도,

더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가

예상 밖의 성적이 나오면....

아.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칩니다.

온 몸의 세포가 녹아내릴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1년 전의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후배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들어가기 전에 앞서>

읽다보면 아시겠지만,

이 글은 여타의 공신님들의 화려한 수기와 같이 다이나믹한 과정과 찬란한 결과물을 보이는 글이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과 비슷한, 혹은 더 모자라는, 그저 1,2년 더 먼저 산 인생을 들려드리며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여러분들께 사례 하나를 더 추가하여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쓰는 글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 고민의 흔적, 재수 실패 후 저의 행로가 어떠했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앞서(2)>

약간 회고록 느낌으로 가겠습니다.

결론에서는 다시 경어체로 돌아올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ㅎㅎㅎ

 

 

본론

1월

일단 중앙대에 우선선발로 합격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어머니께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시며 좋아하셨다.

11월, 12월 시험을 망친 직후에는 어머니나 나나 침울해 있었는데,

계속 상심에 빠져 있는 나에게 기운 내라고 억지로 좋아하셨던 것 같다.

사실 나야 내 스스로가 불안감을 느꼈고 우려했던 일이 터진거였지만,

모의고사 성적표에 피상적으로 나타난 수치만으로 내가 잘 하고 있다고 믿으셨던 어머니는 큰 기대감을 갖고 계셨을테고,

그런 어머니께 내 수능성적은 엄청난 충격이었을텐데....

 

다군에 쓸 데가 없어서 그냥 안 쓰려다가

"안 쓸바엔 아무 데나 너 맘대로 쓰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생각없이 질렀던 강릉치대는 전혀 기대할 상황도 아니었고,

혹시나 연세대에서 추가합격 전화가 오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이것 역시 기대하기 힘들었다.

(생화학과의 최종 경쟁율은 의대 바로 다음으로 연세대학교에서 2위였다. 1시 경쟁율은 제일 낮았었는데, 나처럼 눈치 작전을 펼친 수험생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이 비참한 상황이 싫었다.

제발 이것이 현실이 아니길 바랐다.

현실을 잊고 싶어서 공부에 관련된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마가 얘기 좀 하자고 그러시면 "몰라 몰라" 땡깡만 부렸다.

이런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 가자고 1년 동안 개고생한거 아니라고....

그렇다고 한번 더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이 짓을 1년 더 할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생각한게 아르바이트였다.

다른데 열중하면 좀 나아지겠지, 그냥 돈이나 벌자! 하는 생각으로 알바나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나는 그렇게 모 백화점에서 소중한 젊음을 시간당 4500원에 팔아버렸다.

 

내가 기대했던 내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2월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 했다.

삼수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냥 하기 싫기도 했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도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두 개의 결과로 귀납추론을 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지만,

어쨌든 하락세는 하락세였다.

이것만 봤을 때 삼수하면 더 떨어질 것이었다.

 

2년해도 안 된걸 1년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시간이 부족해서 못 한것도 아닌데.

결국 나의 실패 요인은 시간이 문제가 아닌데 한번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또 만약 한다면, 어떻게 하느냐도 문제였다.

내 솔직한 마음으로는 독학으로 한번 더 해보고 싶었다.

독재 칼럼 연재하면서도 살짝 뉘앙스를 풍겼듯 나는 사교육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1년 동안 공부한 것을 되짚어 보며 스스로 패인을 분석하여 다시 한번 독학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한번 독재로 실패한 나는 부모님께 신뢰를 잃어버렸다.

부모님은 무조건 학원에 보내고 싶어하셨다.

한번 해보고 실패했는데 왜 또 그 짓을 하려고 하냐고 하시면서.....

부모님과 싸우는 것도 싫었고,

올해부터 수학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는데

솔직히 새로운 내용을 혼자 공부한다는게 좀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야간반이었다.

주간반은 7시간 수업/ 5시간 자습인 반면,

야간반은 7시간 자습/ 5시간 수업이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고,

내가 시간 관리만 잘 하면 독재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이 추가된 부분만 진도를 빼면 그 때 학원을 나와 혼자 마무리 하리라.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학원과 학교를 이중등록해버렸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제 대학생 신분이 되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것은 인터넷 공신의 역할을 포함하면서도 수험생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멘토링 공신이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인공활동부터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지원을 했다.

 

3월

학교도 가기 싫고 학원도 가기 싫었다.

그냥 인생 살기가 싫었고, 어디 하나 내 노력과 정성을 쏟아붇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학교는 한 보름 정도 다녔다.

일단 휴학 가능한 시기가 될 때까지 한 학기는 꾸역꾸역 다닐 생각이었는데

머니까 막상 가기가 싫었다.

 

학원은 그나마 코 앞이라 출석은 꼬박꼬박 했다.

그러나 몸뚱아리만 왔다갔다 하는 정도지 공부는 전혀 안 했다.

 

나는 의욕상실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 했고,

점점 성격 파탄자가 되어갔다.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머릿속에는 여지껏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 했다.

 

당시에는 못 봤다고 생각하고 재수를 결심했고 현역 때의 성적,,,,

막상 그 점수보다도 못 미치는 점수를 받으니 예전 그 성적이 너무나 아까웠다.

욕심과 포부도 없어졌고, 고3 때 성적만큼이라도 다시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자신이 없었다.

예전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다 두려웠다.

공부를 넘어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3월 중순에 친한 친구 중 한명의 생일이 있었다.

모처럼 고3 때 친했던 친구들 몇몇이서 모였다.

친구들 만나서 서로 사는 얘기를 하는데,

그저 남이 부러웠다.

 

학창 시절에는 마냥 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 친구들이었는데,

이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4월

공신닷컴에서 메일이 왔다.

2월달에 지원한게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서 그냥 안 되나 보다 하고 말았는데,

데이터가 누락되어 늦어졌다고 하셨다.

 

메일을 받은 다음주 월요일날 내 아이디는 공신으로 상향조정되었고,

내 닉네임 앞에 달린 神자를 보면서 신기한 마음과 동시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공신활동을 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생각은 지원 할 때부터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또 들었다.

그럴 때 마다 나보다 공부를 못 하는 몇몇의 학생들에게라도 도움이 되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시켰다.

 

이제 공신이 되었으니 인터넷 공신 활동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칼럼 연재"라는 것을 해봐야 할텐데,

어떤 내용의 글을 써야 첫단추를 잘 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후배님께서 기하와 벡터 공부법에 대한 칼럼이 올라오길 바라시는 것을 봤다.

나와 비슷한 성적대의 수험생들에 비해 벡터쪽에 자신이 있던 나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남들에게 보여줄 글을 아무렇게나 쓸 수는 없었다.

수용자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기에..

 

그래서 당장 수학 교과서를 펼쳐보았다.

2년간의 수험 생활을 하면서 공부만 열심히 했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에 대해서는 처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던것 같다.

 

그렇게 책임감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니 '수학 공부'에 대해서 스스로 깨닫게 된 점들이 있었다.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의 싹은 이 과정에서 싹텄다.

 

 반응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 글이 부족함을 일깨워주시는 후배님이 계셨고,

나는 다시 후속편을 쓰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면서 또 깨달은 점들이 있었고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커졌다.

 

 

어떤 내용을 담을지 생각하는데 보통 6일이 걸리고 그걸 글로 풀어내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런식으로 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매주 토요일에 글 하나씩 올리는 나만의 약속이 생겨났다.

 

5월

그러다가 결정적인 계기가 나타나게 된다.

두 번의 수학 공부법 칼럼 연재 후,

다음 주 토요일에 글을 하나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마침 그 날이 수능 D-201일이었다.

그래서 후배님들께 자극을 주기 위해 자극충전글을 하나 올렸는데

나에게 과분한 호응들을 해주셨다 ㅋ

(이 글은 내 글 중 유일하게 조회수가 만이 넘었다.)

 

또 그 다음주에는 그 칭찬에 탄력을 받아서 비슷한 성격의 글을 하나 더 올렸다.

이번에도 반응이 꽤나 괜찮았다.

(이 글은 내 글 중 추천수가 가장 높다.)

 

댓글&쪽지들을 보고 일일이 답변을 해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회원분들은 내 글을 보고 희망을 얻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과연 나는....??'

 

내가 페이스 조절을 무시하고 공부하라고 할 자격이 있을만큼 나 스스로는 열정을 불태웠을까

성공은 눈 앞에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못 참고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렇게 내 인생을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서 나중에 성공한 회원분들이 고맙다고 할 때 나는 어떤 기분일까

남들에게 어쩌구 저쩌구 하기 전에 내가 모범을 보여야하지 않을까

 

학교는 어차피 결석을 너무 많이 해버려서 학사경고는 따논 당상이었다.

1학기 마치자 마자 휴학하겠다는 어렴풋한 계획을 잡고 이제 수능에 집중하기로 했다.

 

막상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내 스타일대로 무작정 열심히 하기만 하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어는 원래 그리 못 하지 않았고,

탐구는 암기적 요소가 많아서 공부량에 비례하여 오른다는 믿음이 있어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언어와 수리가 문제였다.

 

언어는 지금까지의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판단이 들어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수리는 사정이 달랐다.

(대부분의 이과생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공부에 쏟은 노력과 시간의 80% 이상은 수리에 투자되었다.

게다가 재수까지 했는데 공부량이 부족하지는 않았을테고,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께 수학 담당 선생님과 상담 약속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불과 10분 남짓한 시간의 상담이었지만 상담 후 내 가슴속에는 자신감이 넘실거렸다.

 

이제 어느 정도 공부할 마음은 잡혔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았는데

벌써 6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6월

별로 공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세번째 6평을 봤다.

 

 

성적은 참 애매하게 나왔다.

94년도부터 시작된 수능 역사 이래 가장 쉬운 시험으로 평가받는 2012학년도 6월 모의평가..

터무니 없는 난이도로 뻥튀기된 원점수와,

그로 인한 기형분포로 높은 등급.

따라서. 얼핏 보면 잘본 시험처럼 느껴질수도 있지만,

백분위와 표준점수를 따졌을 때 결코 잘 본 시험이 아니었다

 

어차피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치른 시험이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단지 앞으로의 공부방향을 잡기 위함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6월 평가원과 더불어,

이 시기는 내가 공신닷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었다.

나 같아도 나처럼 항상 우울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있는 사람한테 말 걸기 싫었을 것이다.

(지금도 약간 그렇긴 한데) 올해 초에 나는 지독한 염세, 비관주의자였다.

인생 모든 것이 뒤틀려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내 정신 상태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죽고 싶었단 말 밖엔...

 

그래서 공신닷컴에 더 애착이 갔었던것 같다.

온라인에서는 어조나 표정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걍 'ㅋ'만 남용하면 밝아보이는....;;)

글로만 표현하면 나는 정상인처럼 보일 수 있었다.

 

공신 동료(사실 그룹 분류만 같지 전혀 동료라는 느낌은 안 들고 아직 배울게 너무도 많은 그들ㅋㅋ;;)들도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내가 쓴 글에 감사의 댓글을 달아주는 고마운 공신이 후배님들을 보며

'내가 그래도 작게나마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자제력이 너무 부족한 사람이어서,

균형을 잡지 못 한다는 것이 있었다.

 

공신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는 싶고,

하지만 아직은 내가 그럴 위치가 아니니까 (수험생 신분이기도 하니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상충되었다.

남들이 보면 괜히 혼자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쨌든 그 점 또한 나를 힘들게 했다.

 

7월

 평가원 모의평가가 낀 수험생들의 6,9월은 정신없이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2011년은 어느새 반토막이 나 있었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드니 섬뜩했다.

현역보다 더 떨어진 재수 성적표를 받은 작년 겨울은 악몽 중의 악몽이었다.

그 악몽을 올해 다시 꾸지 않기 위해선 무언가가 필요했다.

 

 

현재 내가 최선을 다 하지 않는것은 절실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년간의 수험생활로 지칠대로 지쳤고,

돌아갈 곳을 만들어 놓으니,

노력이 부족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나니 7월 말에 여름방학이 있었다.

 

8월

7월말부터 8월초까지 걸친 약 열흘간의 여름방학 동안 나는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200일 가량의 방황을 매듭 짓고 서서히 공부에 물이 올랐다.

학원 다닐 동안에는 학원 수업 듣고 복습하는 것에 급급했는데,

여름 방학동안 내 시간이 만들어져 좋았다.

 

이 시기에 잡힌 공부 습관 덕에 8월 한달은 알차게 보냈다.

아래 사진은 내 플래너에 빼곡히 적힌 내용들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그렇게 죽기살기로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 했고,

흐트러짐 없이 꾸준히 해나갔다.

 

그렇게 8월을 보내고 나니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9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공부를 겨우 한달 정도를 하고,

나는 내 인생 마지막 모의고사이길 바라며 8번째 평가원 시험을 치렀다.

 

수리는 다행히도 원점수가 100점이 나와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외국어는 두개 틀렸지만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아 표준점수는 마음에 들었다.

과탐은 화학에서 마킹실수한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내 진짜 실력은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자신감을 갖고자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였다.

ebs도 공부했고, 독해 훈련도 나름 한다고 했는데,

6평에는 턱걸이로 1등급 나오던것이 이번에는 겨우 2등급에 안착했다.

 

이제 남은 2달동안 언어를 기필코 마스터 하리라 하는 각오를 다지며

9월 역시 6월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보냈다.

 

10월

드디어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8월달에 잡아놓은 공부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좋으련만,

새가슴인 나는 수능이 가까워져감에 따라 가슴이 답답해지며 소름끼치는 공포감에 짓눌렸다.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을까

반드시 잘 해야 할텐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지

남들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을까

등등..

 

이 때는 특별한 사건 없이 그렇게 그렇게...그냥 흘러갔다.

매일 쓴 하루평가란을 들춰봐도,

표현만 다른 같은 내용의 수많은 고민과 고뇌만 가득하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고3/N수 마을에 짦막한 글들을 자주 남겼다.

이 시기가 얼마나 버티기 힘든 시기인지 나 스스로가 너무 잘 알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도록 마음을 다잡아주려고 하는 의도에서 그랬다.

1분 1초가 아까운 수험생들에게 자세한 칼럼보다는 그 쪽이 더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서였다.

(효과가 어땠는지, 진짜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1월

드디어 수능이다.

세번째 수능...

동생과 함께 보는 수능....

공신닷컴 소속 온라인 멘토로서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보는 수능....

 

나는 수능볼 때 가채점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원서는 성적표가 다 나온 다음에 쓰는것이고,

마킹 실수로 달라질수도 있는 가채점 결과로 상담 받고나 모의지원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실전 시험에서는 1분1초가 너무 소중하다.

내가 쓴 답을 옮길 바에는 애매한 문제 더 고민하는 편이 낫다.

(점심 시간에 밥 먹으면서 어려웠던 29번, 30번 문제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래서 수험표 뒤에 딱 32, 39만 적어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운 좋게도 두개 다 맞았다^^;)

 

난 가채점을 안 해서 지금 내가 시험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느낌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시험을 잘 본 것 같아도 막상 성적표를 받으면 못 본 경우는 많아도,

시험을 못 본 것 같은데 실제론 잘 본 경우는 드물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다.(ㅠㅠ)

 

난 원래 다니던 학교에 입학금을 또 내고 다시 가야할지도 모른다.

아니, 더 낮은 학교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후회고 뭐고 없다.

 

삼수가 나에겐 '유일한' 길이었으니깐.

 



결론

후....

결론은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일단 본론의 마지막 문장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할게요.

결국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돌아온거거든요.

 

"원대한 뜻을 가졌던 사람이 도전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면 대안으로 선택한 그 현실에 절대 만족하지 못 하고 전쟁터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고,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고민이야 되겠지만, 할거면 제대로 하세요.

병신 같은 놈들이 통계나 가능성을 들이대며 함부로 자신을 한계짓더라도.

뭐라 비웃든 간에 네가 갈 길을 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할지 말지 지금은 선택의 갈림길이라고 생각될겁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는 운명이었습니다, 선택의 문제라기 보단....

 

저는 구본석 공신님이나 이종민 공신님처럼 그 기간을 보상 받을 만큼의 성적을 거두고

위대한 멘토가 되어 후배님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래서 보통의 수험생들에게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런 얘기를 해줄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참 고민이 많은 상황일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입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크겠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친구들은 장학금이다 알바다 뭐다 해서 자기 앞가림을 다 하는데,

나는 3년째 부모님 등골 뽑아먹고 있으니까요.

인생에 대한 회의감은 기본 옵션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 이상 머리에서 맴돕니다.

 

저도 제 인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해준다는게 참 웃기긴 해요.

다만 제가 깨달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글을 올립니다.

그래도 여러분들보다 1,2년 더 살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의 말이 더 공감되고 앞으로도 비슷한 길을 가게 되어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지 않겠어요?

 

 

삼수랑 재수는 차원이 다릅니다.

재수 때는 패배의식보다는 오히려 오기로 살았습니다.

'고3 때는 내신 때문에 시간이 많이 뺐겼어'

'어리버리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못 썼어'

'수능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거지 내가 못 한게 아니야'

'1년 동안 어디 한번 수능 공부에만 미쳐보자!'

이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의 실패는 결코 운이 아니거든요.

그 성적을 자기 실력으로 인정해버리고 이는 곧 자신감의 결여로 이어집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손절매를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삼수생의 하루는,

아침에 겨우 마음을 추스려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밤에 잠에 들 때면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입니다.

수험생활 초기에는 울며 잠들었지만,

중후반기에는 눈물이 말라 더 이상 흐르지도 않습니다.

 

 

주변사람들이.. 절대 나올수없을거라구 그래요...

근데 그말을 수긍하는 제가 정말 싫어요. 도와주세요... 

라고요?

그에 대한 답은 여러분들 머릿속에 이미 있을걸요.

EBS 고득점 외국어영역 330제 중 제가 좋아하는 지문을 발췌하며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In making images for the things you desire,

you must be careful not to discuss them with people who cannot share your vision.

Nonambiguity is the shaping force of reality!

It means that when you remove all doubt that you will receive what you have imaged,

it is sure to come to you.

Believe in your images with all your strength,

and don't allow nonbelievers to distort or destroy your faith by quoting statistics, or telling you all the resons you cannot achieve them.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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