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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말로 칼럼을 쓰니까 글이 술술 잘써져서 ㅋㅋ
이번에도 반말로 써볼게.
먼저 내가 요즘 쓰는 칼럼들은
‘공부를 잘하기 위한 칼럼’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공부 쯤이야 조금 못해도 괜찮으니,
너희들이 현실에서 머리 아팠던 문제들에 대해..
정말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 글 대부분은 심리에 관한 글이고,
오늘 글 역시 심리에 관한 거야.
바로, 수많은 학생들의 공통된 고민.
열등감, 그리고 자만심에 대한 것이지.
<열등감, 그리고 자만감은 무엇인가?>
수많은 학생들에게 난 열등감 문제로 질문을 받아왔어..
여기서 열등감이라는 것은
뭐 쟤가 나보다 공부 잘해서 생기는 감정 뿐만이 아니라,
'펜을 쓰는데 나보다도 더 좋다...'
'나보다 문제를 많이 푼다..'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고 쉬는시간에는 항상 애들이 걔 주변에만 간다.'
뭐 이런 것들이지..
열등감이 있는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해.
“난 뭐를 해도 안되고 노력해봤자 거기서 거기고 크게 달라지지 않아”
하는 거지.
이렇게 열등감 문제로 질문을 받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자만심 때문에 실패하는 친구들을 더 많이 봐왔어.
(이들은 상담을 잘 안해 ㅋㅋ 자기가 최고거든 ㅋㅋㅋㅋ)
이들은 중간고사를 보면,
‘내가 이렇게 똑똑한데..그까짓 중간고사 쯤이야 1주일 정도만 하면 되지 않겠어? ‘하고 생각해.
그리고 캐발려.....
ㅋㅋㅋㅠㅠ
자만심이 있는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해.
“난 다른 애들에 비해 뭔가 달라. 난 특별해.
난 이만큼 위에 있고 쟤네들은 내 아래에 있어. “
<고정형 사고의 특징>
이런 열등감과 자만심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바로 자신의 능력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거야...
능력이 낮게 고정되어 있다 생각하면, 열등감에 좀 더 치우치는 것이고.
능력이 높게 고정되어 있다 생각하면, 자만심에 좀 더 치우치는 것이지.
재밌는 점은 말야.
그래서
열등감 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조금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한 자만심을 가지고,
자만심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심한 열등감을 가져.
결국 자만심과 열등감은 하나야.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항상 붙어다녀.
앞면은 열등감,
뒷면은 자만감인거지.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고정형 사고를 지녔다>라고 말해.
이들의 특징을 몇가지 말해줄게.
첫번째 특징이야.
우선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의 말로 한정지어.
‘넌 멍청해’
‘넌 수학을 못하는구나’
‘넌 바뀌지 않는구나’
‘넌 의지가 없구나’
‘넌 천재야’
‘넌 똑똑해’
‘넌 재능있어’
그리고 이런 것을 곧이 곧대로 들어서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지.
그래서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애써 ㅋㅋ
멍청하다고 놀림받은 사람들은 노력했는데도 성적 안나오면 더 멍청한 것처럼 보일테니까 노력 안하는 척을 해야 하고,
천재라고 인식된 사람들은 천재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노력 안하는 척을 하는거지.
이런 식으로 계속 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거야.
두번째 특징은 굉장히 정적인[static] 사고 방식을 가진다는 거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수주의자가 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믿음체계를 구성하고,
그것의 절대적인 수호자가 되는 것이지.
자만심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 것만 기억해서 자신이 짱이라고 믿고,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실패한 것만 기억해서 뭘 해도 안된다고 믿어.
지식에 대한 열린 마음이 없어.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비판을 두려워해.
그것은 자신의 믿음체계를 위협하는 것이거든 ㅋㅋㅋ
특히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당황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그 사람을 미워하지.
자만심 있는 사람들이 나이들면 더 무서워 지는 것이
나이가 들고 권력을 갖게 되면
자신의 경험이 더 많으니 비판을 더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권위나 힘으로 찍어 누른다는 거야.
실패 역시 두려워하지.
뭔가를 실패하면 놀림감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
자신의 규칙이 깨지는 거니까 말이야.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해.
세번째 특징을 말해줄게.
이들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기대해.
그리고 당장 변하지 않으면 빨리 포기해버려.
그리고 재빨리 포기한 다음에 자신의 믿음을 더 강화하지.
열등감 심한 사람은 금방 해서 안되면 ‘난 역시 안되는 거야’ 하고 생각하고
자만감이 있는 사람은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안되면 ‘역시 내 방식이 옳아’ 하고 생각해.
그래서 변화가 없지.
20대, 30대가 아니라 70대가 되어서도 변화가 없어.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우리나라에서 열등감이 가장 강한 집단이 어디게~~?
놀라지 마.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국내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지 (혹은 자만감을 느끼는지 ) 혼자 추리해봐도 좋아.
그리고 슬픈 점은 무엇인지 알아?
90% 이상의 사람이 고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변화를 두려워하고.
낡은 사회구조를 지키려고 온갖 보수권력이 성장을 막아.
너희들보고 공부를 못한다고 멍청이라고 열등아라고 말하고.
좀만 잘하면 잘하는 애로 구분해 버리고.
<성장형 사고 갖기>
그렇다면 이런 <고정형 사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대로 생각해야해.
그것은 바로 <성장형 사고>야.
자신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야 해.
마치 능력이란 근육과 같아서, 장기간의 시간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해.
누구나 운동을 자꾸 하면 근육을 키울 수 있듯이
누구나 공부를 하면 잘할 수 있어..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막는 것은,
나와 저 사람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그래.
서로 다르다고 구분짓기 시작하는 것이 열등감과 자만심의 시작이야..
결국 우리 모두는 똑같은 인간이고, 나도 훈련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정적인 경험적인 지식이란 없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은 변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해.
인류는 천둥번개가 신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가벼우나 무거우나 똑같이 떨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물론 공기저항 무시 ㅋㅋㅋ )
이렇게 앞으로의 지식,체계,믿음 모든 것은 계속 바뀔거야...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은 없어.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이기도 해.
설령 새로운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위협하고 부담스럽더라도,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갖춰야해.
(**사족 : 난 이런 점 때문에 정보화 사회를 환영해. ㅋㅋ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주잖아?
그래서 생각이 깨어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 사회도 많이 투명하고 유연해졌고...
앞으로 세상은 더 멋지게, 정말 멋지게 변할거야. )
이런 과정 속에서 실패를 받아들여야해. 실패는 절대 절대 나쁜 게 아니야. 실패를 감추려고 해선 안돼.
실패는 축복해줘야 마땅한 일이야.
여태까지 잘못된 것을 알게 하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세상의 축복이란 말이야.
김국진이 '남자의 자격' 강연에서 말했잖아?
우리는 아기 때 2000번 정도 걸으려는 실패를 해서 지금 걸어다닐 수 있다고.
그런 축복이 없었다면 우리가 걸어다닐 수 있었을까?
이렇게 자신이 발전하기 위해 실패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너희는 결과보단 과정을 중시하게 돼.
결과보단 과정을 중시하라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실패를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야 가능한거야.
그러면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고,
우리가 노력하고 실패하는 것이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지.
마지막으로
이런 성장형 사고와 고정형 사고를 알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타입인지도 금방 감지하게 된단다?
예를 들어 너에 대해 얘기할 때
“넌 똑똑하구나”
하며 보이는 결과를 칭찬하는 사람은 고정형 사람이고,
“넌 수학에 굉장히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구나”
"넌 항상 분별있게 사고하려 하는구나"
하며 태도를 칭찬하는 사람은 성장형 사람이야.
사람을 너무 가려서도 안되지만,
횽은 너희들이 성장형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배워나갔으면 좋겠다.
여태까지 한 말을 정리해볼게.
고정형 사고 | 성장형 사고 |
결과 중시 | 과정 중시 |
자만감/열등감 있음 | 자만감/열등감 없음 |
남이 만든 이미지로 자신 평가 | 남의 이목 중시 안함 |
실패는 저주. 하지 말아야 할 것. 두려워함 | 실패는 축복. 발전의 계기. |
정적인 지식체계 |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 |
나와 다른 사람은 다름. | 나와 다른 사람은 다르지 않음 |
능력은 한정. 변해봤자 거기서 거기.(단기적 예상)
| 능력은 근육과 같음. 성장 가능.(장기적 믿음) |
평가 : “넌 머리가 좋구나!” | 평가 : “넌 노력을 많이했구나” |
<성장형 사고, 과연 적용되나?>
음...그런데 이런 사고를 가지면 변하긴 하냐구?
응. 변해. 뉴욕대학에서 성장형 사고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성적을 <훨씬> 잘 받았어.
그리고 성적에 국한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더 좋은 예가 있어. 바로 내가 변했어.
내가 위에 고정형 사고를 깠지만, 내 자체가 고정형 사고를 가진 대표적인 예였어.
정말 부끄럽지만 난 내가 똑똑하고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열등감도 심하게 가졌었어. 게다가 그건 옛날 일이 아니야. 최근 일이야.
그런데 (나보다 더 강한) 고정형 사고를 가진 사람을 만나다보니 그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 겠다고 타산지석으로 삼게 되었지...
또한 성장형 사고를 가진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가진 여유와 열린자세를 보고 많이 배우게 되었어....
또 우연한 기회에 이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도 접하게 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한 여러가지 실패들이 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할 것을 알려줬어.
그래서 그나마 성장형 사고를 갖게 되었어.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알아?
성적 ?
크게 변화 없어 ㅋㅋㅋㅋ 오히려 더 떨어졌지.
난 말야.
행복해졌어.
예전에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던 세상을 좀 더 열린 채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실패가 두려웠던 일들을 한번 더 해보게 되었지.
나 자신을 한정짓고 컴플렉스를 가졌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
나와 너희들이 다르지 않다고 항상 강조하잖아.
나와 마찬가지로
너희도 성장형 사고로 변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믿어.
더 이상 바보 멍청이라 놀림 받으면서 무시 당하면서 살지 않아도 돼.
횽은 진심으로 너희가 소중하고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어...
그것이 지금까지 글을 쓰는 동기이기도 하고,
이 활동에서 내가 가치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
남이야 뭐라하건!
남이 너희가 성공할 수 없다고 기죽이든,
남이 너희를 천재라고 띄우든,
너희 자신을 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되는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횽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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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법칙
미국 한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H.W.하인리히는
고객들을 상담하고 그들의사고를 분석한 결과
1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주변에서 300번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를 1대 29대 300 의 법칙이라 부릅니다.
징후 --> 경미한 사고 --> 사고
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머피의 법칙.
공군에서 한 실험이 계속 실패하자,
머피 대위는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알고보니 전극봉의 한 쪽 끝이 잘못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는 한 기술자가 배선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아 생긴 사소한 실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꼭 그 방법을 쓴다"고 말하였고,
그것은 머피의 법칙이 되었습니다.
확률의 법칙
1회의 시행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p라고 한다면,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1-p가 됩니다.
2회의 시행에서 그 사건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1-p)*(1-p) 가 됩니다.
이를 n회의 시행을 했을 때 사건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확률로 일반화 해보면,
(1-p)^n 이 되고,
이를 테일러 법칙으로 근사값을 계산해보면
약 1-np 가 됩니다.
이 때 p가 0.000001이라 하더라도,
n이 점점 커질수록 np의 값은 1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에 따라 1-np의 값은 0에 가까워지게 되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특정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0에 가까워 지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한번 쯤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만약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경미한 치약 사고
오늘 저에게 사고가 났습니다.
내 가방 앞주머니에 뒀던 안티프라그 치약이 터졌습니다.ㅠㅠ
노트북이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에,
뒷가방 안에는 마우스와 충전기를 넣은 상태였는데요.
그 상태에서 가방을 거꾸로 놓았더니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치약이 터진 것입니다.
덕분에 내 가방 앞주머니는 치약으로 가득찼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마우스 usb포트 안까지 치약이 들어갔습니다.........
그걸 처리하는 데 30분이 걸렸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1주일 전에 같은 상황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치약 뚜껑만 약간 열린 상태에서 내용물은 조금만 새어 나왔습니다.
그 때 나는 이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저 "다행이다" 하며 혼잣말을 되뇌었습니다.
실수가 실패로 이어진다?
이제 범위를 좁혀서 공부로 가봅시다..
공부 중에서도 수학에 대해 말해봅시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 지금즈음 중간고사 끝난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아픈 기억이지만) 수학 중간고사를 회상해 봅시다.ㅠㅠ
그 중 틀린 문제가 어떤 문제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아예 모르는 문제를 틀렸나요?
제 생각에는 틀린 것 중 80%는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인데 틀렸던 것일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 실수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그 실수를 잘 생각해 봅시다.
연습할 때 똑같은 실수를 한 적이 없었나요?
아마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앞서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 봅시다.
징후는 경미한 사고로 이어지고,
그 경미한 사고는 대형사고로 이어집니다.
아마 여러분은 중간고사 때 실수를 할 수 있는 문제점을 발견했음에도 불구,
그것을 고치지 않은 채 넘어가서
중간고사 때 수학문제를 틀리는 경미한 사고로 이어진 것일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 경미한 사고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큰 사고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 사고는 아마 수능 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머피의 법칙처럼, 확률의 법칙처럼,
결국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제 동생 얘기를 들어보죠.
동생이 2008년 수능 수리영역에서 1문제를 틀렸습니다.
그래서 2등급을 받았죠.. ㅎ
1문제를 왜 틀렸을까요?
삼각형의 넓이를 계산할 때, 마지막에 1/2을 곱하지 않아서 틀렸답니다.
그런데 1/2을 곱하지 않는 실수는 그 때가 처음이었을까요?
아닐겁니다.
종종 실수를 했지만 그저 실수라고 하고서 넘어갔고,
그 징후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재수생 때 같은 반 형 또한 마찬가지였었습니다.
삼각뿔의 부피를 구하는데 1/3을 곱하지 않아서 4점짜리 문제를 날렸습니다.
그 4점짜리만 맞췄더라면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을텐데..
덕분에 원하는 대학보다 약간 밑의 대학을 진학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려는 지 감이 좀 오시나요? ^^;
사전 예방과 사후 교정
인생에서는 작은 사건 사고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에게 치약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아주 작은 징후를 캐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것은 경미한 사고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사건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동생과 재수 선배가 수학문제를 틀렸던 것은, 역시 계산실수를 한 후 그것이 사고가 될 수 있다는 징후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 경미한 사고는 아닙니다.
관악초청 강연에서 윤석철 교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sober한 정신을 가지라.
리스크를 주의깊게 보지 않고 술에 취한 상태(=not sober)에 있을 때
우리는 리스크를 그저 지나치게 되고
결국은 사고가 일어난다."
그는 그 예로서 위험자산에 투자해 왔던 미국의 금융회사들을 들었습니다.
머피의 법칙이나 하인리히의 법칙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 자체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전 예방>의 중요성에 대해 한 말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배워야 할 점은 잘되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다.
일이 풀리지 않고 힘든 상황이 왔을 때야 고칠 수 있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과 하인리히의 법칙에서 결국은 일어나게 되는 사고에 대해 한 말입니다.
우리는 결국 사고를 만나게 되어 있고
사고를 만나면, 그 사고의 원인을 고찰하여,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후 교정>의 중요성에 대해 한 말이다.
두 사람은 마치 다른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전 예방과 사후 교정은 연달아 있습니다.
제가 치약 사고를 겪은 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사후 교정임과 동시에
더 큰 사고를 겪지 않기 위한 사전예방이기도 합니다.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여(=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경미한 사고를 당하면
경미한 사고의 원인을 찾아서
사후 교정을 함으로써
더 큰 사고를 예방해야 합니다.
사실 인생은 징후, 경미한 사고, 사고로 연속되는 3가지의 과정으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아주아주 사소한 징후, 아주 사소한 징후, 사소한 징후, 징후 등등으로 각 과정도 잘게 잘게 나뉘어
매우 연속적이며 복잡한 분포를 가집니다.
(wvelength 가 감마선부터 쭈욱 연속적인 분포를 가지듯이, 인생의 사건 사고들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이런 분포를 가지지 않을까요? )
동생은 2008년도 수능에서 한 문제를 틀려서 사고를 당했지만,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사후 교정을 하여
2009년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지금은 예과생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수능에서 틀렸던 문제는 엄청나게 큰 사고로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또 하나의 좋은 사전 예방이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통찰은
삶에서는 사소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소한것에서 모든일이 발생하는데도 우리는 사소하기때문에 넘어가곤 했던 겁니다.
모든 일은 크든 작든 원인과 결과가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 원인을 그저 지나치지 않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다면,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끊임없이 교정하며 예방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프로고,
우리는 [프로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실수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를 경계하는 시 한편을 첨부합니다.
이제 그만 슬퍼하세요
소네트 35
윌리엄 셰익스피어
당신이 저지른 짓을 이제 그만 슬퍼하세요.
장미엔 가시가 있고, 맑은 샘에도 진흙이 있잖아요.
구름과 천체가 해와 달을 침침하게 가리고
어여쁜 꽃봉오리에도 역겨운 벌레가 산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 나도 지금 그래요.
비유를 사용해 당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당신의 허물을 용서해 나 자신을 더럽히고
당신의 죄과를 변명해 주는 건 그 죄보다 더하거든요.
당신이 몸으로 저지른 실수에 이성을 끌어대고.
당신의 적대자가 당신의 변호인이 되어서
자신에 거슬러 법에 맞도록 변론을 하니까요.
사랑과 미움이 그처럼 내란을 일으키니
내 것을 아프게 뺏어가는 귀여운 도둑과
나 자신 공범이 되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군요.
No More Be Grieved
Sonnet 35
William Shakespeare
No more be grieved at that which thou hast done:
Roses have thorns, and silver fountains mud;
Clouds and eclipses stain both moon and sun,
And loathsome canker lives in sweetest bud.
All men make faults, and even I in this,
Authorizing thy trespass with compare,
Myself corrupting, salving thy amiss,
Excusing thy sins more than thy sins are;
For to thy sensual fault I bring in sense--
Thy adverse party is thy advocate--
And 'gainst myself a lawful plea commence:
Such civil war is in my love and hate
That I an accessary needs must be
To that sweet thief which sourly robs from me.
오늘부터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 | 2011.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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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과 자만심은 하나다 - 더 이상 바보 멍청이로 살지 않아도 돼.. (1) | 2011.02.06 |
빈 수레가 요란한 이유 (0) | 2011.02.06 |
꿈은 목표가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 (0) | 2011.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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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고 싶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그 꿈을 말하고 다니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개적' 선언은 오히려 꿈을 현실화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 뉴욕대학(NYU)의 피터 골비처(Gollwitzer) 교수 연구팀은 실험 대상이 된 뉴욕대 로스쿨 학생들에게 '학교가 부여하는 교육적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라는 문장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에 대해 '확실히 그렇다' 혹은 '확실히 아니다' 등 평가를 하게 했다. 다만 어떤 그룹은 이름을 공개토록 했고 나머지 그룹은 그냥 무기명으로 쓰게 했다. 이름을 쓴 그룹은 자신의 목표를 외부에 알린 효과를 갖게 된 셈이다. 이후 연구팀은 실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교육적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밝힌 피실험자들을 형법 케이스 20개를 분석하는 로스쿨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결과는 뚜렷이 대비됐다. 목표를 감춘 그룹이 목표를 공개한 그룹보다 월등히 열심히 공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골비처 교수는 목표를 외부에 밝힌 이들은 '꿈을 이미 완성했다는 섣부른 느낌'을 갖기 때문에 공부를 덜 열심히 한 것으로 분석했다. 즉 목표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순간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골비처 교수는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주위에 공언하는 어머니는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자신을 이상적인 어머니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연구에 대해 "공개 선언을 하면 이를 해야 할 의무감을 느껴 실행력이 높아진다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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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어디갔어?
우리는 어렸을 때 저마다 꿈을 세운다.
판검사, 의사, 변호사, 경찰관, 과학자, 대통령까지..
그러던 어느 순간 나이가 먹고 어른이 된 후에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삶에 꿈이 없어졌어.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어."
난 다르게 말한다.
꿈이 있다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꿈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꿈을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동기부여가 안돼요 ㅠㅠ
"전 꿈이 없어서 의지가 없고 동기부여도 안되서 공부를 못하겠어요...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공부를 잠깐 하더라도 왜 해야 하나하고 생각해요..
금방 의욕이 사라져요..
어떻게 해야하죠? ㅠ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까요?
지금부터 공부하면 할 수 있나요?"
음...그 학생은 과연 '목표'가 없어서 공부가 안되는 것일까?
잠깐, 위 상담 사례에서는 '꿈'이라는 것과 '목표'라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
꿈에서 파생되는 단기목표, 장기목표?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인생의 꿈부터 세워라. 꿈 없이 무슨 삶을 살겠는가?’
요즘은 티비에서나 책에서나 모두가 ‘꿈’에 대해 말하는 시대다.
공부법 책을 포함한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도 꿈을 강조한다.
거기선 꿈을 세운 다음, 꿈을 행한 단계를 하나하나 설계하라 한다.
10년 계획, 5년 계획을 짜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하루계획을 짜라 한다.
이렇게 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한다.
다음 그림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꿈의 피라미드다.
자신이 인생에서 이뤄야 할 가치를 먼저 정하고,
그에 따라 먼 미래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계획을 하나하나 세우라는 것이다.
꿈이 없으면 죽은 인생이란다.
꿈이 공부를 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란다.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저마다 꿈을 세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목표를 하나하나 차례 차례 정한다.
"사람을 돕고 싶다!"
“사람을 돕자니 멋진 의사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의대에 가야 한다!"
"의대에 가기 위해선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
"정했다! 내 목표는 수능 480점 이상!! "
"오늘 열심히 공부한다!! 아자!"
그런데, 과연 그런 꿈을 세웠을 때 가슴이 뛰고 의지가 솟아오르는가?
책상 앞에 ‘의대 목표’ 라고 붙여놓으면 더 내 마음이 강해지고 공부가 잘되는가?
이론적으로는 맞을 듯하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봐 온 학생의 사례들에서는,
이런 목표가 도움이 된 적이 거의 없었다.
거의 없었다는 말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꿈의 피라미드, 바닷가 위의 모래성
우선 이런 목표설정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지극히 단기적이다.
계획을 세운 후 3일 동안은 의지에 타올라 동기부여가 되긴 하는데 그 의지는 금방 잿더미가 된다.
힘들게 한 공부에 대한 보상이 너무 늦게(1년, 혹은 3년 뒤) 따라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에게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3년 뒤에는 멋진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 라이프를 누릴 수 있다고 말을 하더라도,
지금 당장 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고 고되다면 결국 그 학생은 점점 지쳐나가고 탈진할 심산이 크다.
또한 목표는 오히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괴롭게 만든다.
내 목표는 서울대인데 점수는 이것밖에 안되니 더 주눅이 든다.
포기해버릴까 생각하게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혹시 위와 같은 이것을 세워보고 실천해 본 사람이 있는가?
6개월, 아니 한달만 지나면 이것은 쓸모 없어진다.
세상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10년 전, 2000년 초반에 2010년에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TV를 보고 인터넷을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세상은 예측 못한다.
점점 더 엄청난 속도로 변한다.
세상이 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변한다.
자신이 흥미로워 하는 것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14살 때는 연예인에 미쳐 연예기획을 하면 좋겠다고 하다가도,
16살 때가 되면 람세스라는 소설을 읽고 이집트 학자가 되겠다고 하다가도,
18살 때에 존경하는 학원 선생님을 보고 학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한다.
21살 때에는 스마트폰에 미쳐 IT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계속 변한다.
이런 피라미드는 마치 바닷가에 세운 모래성같다.
파도가 오면 휩쓸려 사라지기 때문이다.
꿈을 모두 이룬 다음에 뒤를 돌아보면서 그림을 그려보면 위와 같은 그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앞날을 저런 식으로 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식 월봉 차트를 보면 지난 기간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앞으로 단 하루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이 피라미드는 마치 꿈이란 것을 이루는 게 ‘정해진 곧은 길’을 하나하나씩 밟아 나가는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마치 산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주 먼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한다' 같은 느낌을 준다.
의대생이 되기 위해 수능 480점을 맞겠다는 단기목표를 세웠을 때,
수능 480점을 맞는 과정 자체가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장기목표를 위해 지나가야 할 단계'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삶 하나하나에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저런 식의 모양을 띄게 되는 게 맞겠지만, 저런 수순을 짜놓고 살면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사실은 꿈에 대해서 잘 모른다.
꿈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계획할 수 없다
꿈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위의 피라미드 목표를 따라가는 것처럼 살지 않는다.
그건 이론에서만 존재하는 허울뿐이다.
이 허울을 쫓으면 자기 자신을 잊게 된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기회를 잡아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 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인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졸업축사 연설문 중>
서체 수업을 청강했습니다. 저는 다른 문자들 조합 사이에서 많은 공간들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무엇이 굉장한 서체를 만드는 지에 대해, serif와 san serif를 배울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정교한 작업이었고 저는 그것에 매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중 그어떤것도 제 삶의 실질적인 희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10년후,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하였을때, 이것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맥킨토시로 모든것을 디자인하였죠.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첫번째 컴퓨터 였습니다. 제가 만약 대학에서 하나의 코스로 공부하였다면, 맥킨토시는 다중 활자면이나 비례적인 폰트를 절대 가질 수 없었겠지요. 그리고 윈도우가 맥킨토시를 단지 복사했기때문에,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것들을 가질수 없었겠지요. 제가 중퇴하지 않았고, 서체 과목을 도강하지 않았다면, PC는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멋진 서체를 가질 수 었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었다면, 이런 점들을 연결하는 것들은 불가능 했었겠죠, 하지만 10년을 되집어 보는 것은 매우 명백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점들을 연결하는 것을 못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로 되집어 보는 것은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점들이 언젠가는 당신의 미래에 연결될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운명이 되었든 삶이 되었든 카르마든지 간에 무엇인가를 믿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저를 좌절하지 않게 하고, 제 삶을 다르게 만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과연 스티브 잡스가 '자기계발서'에 있는 대로
꿈의 피라미드를 만들고
오늘 하루 계획을 짜서 글씨체 수업을 듣고
10년 계획으로 매킨토시 컴퓨터에 그것을 이식할 생각을 했겠는가?
ㅋㅋㅋㅋ 그건 생각만 해도 웃기다.
우리 삶을 뒤돌아보면 점들을 연결하는 것처럼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지만,
절대로 앞은 내다볼 수 없다.
우린 자신의 느낌을 믿고 앞으로 나갈 수만 있다.
이번에는 스티브 잡스의 최대 라이벌인, 마이크로소프트 최대 주주(ㅋㅋ)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세상 모든 컴퓨터에 자신의 소프트웨어가 설치되는 것을 꿈꿨다.
많은 시간동안 컴퓨터를 연습하면서(15시간 이상)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운영체제가 막 필요할 시점에 적절한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IBM과 계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위와 같은 꿈의 피라미드 같은 길을 따라가며,
단기적 목표로 IBM과 계약하고 장기적 목표로 소프트웨어가 모두 설치되는 것을 계획했을까?
아니다. 그 역시 단 한치 앞도 보지 못했다.
다만 그는 항상 꿈을 가진 덕에 환상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나타난, 꿈을 이루이 위한 기회를 하나하나 잡아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를 어떻게 잡을 수 있었을까?
기회에는 상당히 운이 많이 따르기도 한다.
그는 컴퓨터가 막 범람할 시기에 운좋게 태어났다.
그리고 1970년대 당시에 그 사람 만큼 컴퓨터를 많이 접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만약 빌게이츠가 위대한 미술가가 되려 하는 꿈을 가진 상태에서 컴퓨터 공부를 했었다면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컴퓨터에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려는 꿈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일에 대응할 때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선택을 하였다.
그래서 무심코 흘려보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준 것이다.
이렇게 꿈은 기회와 노력의 방향을 일치하게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계획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꿈은 정해져 있어서 올라야 할 언덕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수순을 밟아나가야 할 정해진 과정이 아니다.
입시만 놓고 보면 정해진 수순을 잘 밟아야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입시조차도 정해진 수순을 잘 밟아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
교과서처럼 진도를 빼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꿈은 구체적 목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45세까지 50억을 벌고 명예롭게 은퇴! 그 후 요트타며 여행!”
이런 것을 꿈이라고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오오..남들 다 정신없이 살아가는데 당신은 인생의 계획을 잘 세워놓았군! 비전 있는 사람이야...당신 크게 되겠어!”
하며 말한다.
하지만 난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것보다 시시한 꿈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구체적 목표는 꿈이 아니다.
계산적인 사고다.
이런 꿈은 절대 가슴이 뛰지 않는다.
'35세에 벤츠를 탄다!' 이런 일은 흐뭇하게 할 수는 있지만 가슴이 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꿈은 절대 큰 것을 이룰 수 없다.
빌게이츠가 이런 꿈을 가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ㅋㅋ
꿈은 왜곡되고 제한되었을 것이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데 거기밖에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 꿈이란 무엇일까?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생생하게 꾸면 이루어진다는 바로 그런 꿈이란 무엇일까?
꿈이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
꿈이란 것은 어떤 구체적인 종착역이 아니다.
꿈은 자신이 본능적으로 갖는, 내면의 순순한 흐름에서 나오는 느낌이다.
그건 어떤 대단한 영향력/권력을 갖게 된다든지, 엄청난 부를 갖게 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 흘러나와 평생 이루고 싶은 순수한 가치다.
그런 가치를 갖고 추구할 때 바로 가슴이 뛰게 되는 것이다.
난 얼마 전 책에서 꿈에 대해 아주 정확히 서술한 문구를 봤다.
“꿈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
꿈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
마치 별같은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다.
느낌은 계산할 수 없다. 계획을 짤 수도 없다.
산을 오를 때
산길이 이쁘게 터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꿈이 아니다.
산길도 없는, 우거진 숲에서
자신이 꼬불꼬불한 길을 만들어가며
이리저리 들리며 한치앞도 볼 수 없을 것처럼 가다
결국 정상에 도착하려는 것, 그것이 꿈이다.
꿈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은 사실 꿈꾸는 자를 낮게 평가하는 말이다.
우리가 보기에 엄청난 노력을 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 꿈이 있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 꿈 안에 빠져 살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데 굳이 왜 노력하려고 하겠는가?
인생의 우선순위 : 꿈을 찾는 과정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에,
대학교에서는 스펙에,
회사에서는 업무에
계속 주어진 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기대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고
대학교 때 공모전에 입상하고 영어점수를 잘 받고
회사에서 멋진 성과를 낸다 해서
꿈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의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의대생이 되었는데 허탈감을 느낀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가지고 그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
높게 나온 점수에 맞는 명예를 갖기 위해서,
또는 그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따라
진학을 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하고 아름답고 특별합니다.
우리가 진정 어떤 존재인지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는 놀랄 만큼 강한 존재입니다.
30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뭔가 되려고 해 왔습니다.
뭐든 잘하고, 테니스도 잘치고, 좋은 학점도 받고
모든걸 그런 관점으로 봤어요.
지금의 내가 여러 가지에 만능이라면
그건 내가 게임을 잘못했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게임은
내가 이미 무엇이었는지를 찾는 것이었으니까요.
다른것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모두가 하나입니다."
<영화 '시대정신' 중>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는 이런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삶의 목적의식을 ‘따라가는 것[follow up]’이 아니라 ‘찾는 것[find out]’으로 해야 한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탐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말로 자신을 단정짓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대대로 잘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진실되게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반드시 실질적인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
동화책에서 본 과학자와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는 과학자는 다르듯이,
직접 경험을 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다.
앞서 '과학자가 되겠다'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사라진 이유는
우리가 직접 경험한 뒤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가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심지어 대학교 때) 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걸 죄의식을 가져선 안된다.
학교생활 외에는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에게
꿈부터 정하고 이루고 싶은 것을 정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평생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이루고자 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아무것도 체험하지 않은 상태로 10대 때 인생 전체의 꿈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성급하게 미리 꿈을 정하게 되면,
그저 다른 사람에게 들어온 대로 목표로서 정하고,
다른 사람의 기대대로 살게 된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
먼 미래의 꿈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은 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수업을 들을 때 이 수업을 힘겹게 참고 졸린 잠을 참고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는 꿈을 위해 산다 말하지만, 사실 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목표를 미리 정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것은 미래에 휩쓸려 가는 것이다.
진짜 현실에 충실하는 것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수업을 들을 때도 이것을 참고 이겨내야할 대상으로 삼는 대신,
수업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학습내용 하나하나에 순수한 호기심을 쫓아가며 느낌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진짜 꿈을 찾는 길이고 꿈을 위해 가는 길이다.
당장의 목표가 없다고 해서, 꿈이 없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아도 좋다.
시작하기도 전에 부담스러워 하지 말라.
꿈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기에,
이 느낌을 찾으며 따라가는 것 또한 행복하다.
내가 재수생 때 입시에 성공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고3때까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만 해야겠다던 강박관념에 있었지만,
재수 때 부터는
학습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으로 나를 찾아나가기 시작했을 때
공부가 재밌어졌고 삶이 즐거워졌고 결과도 좋게 나왔다.
나의 꿈
나 역시 10대 초반부터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내면을 관찰하고
꿈과 성공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25살이 되어서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앞으로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찾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꿈을 세우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난 이것을 대단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꿈을 찾는 과정도 행복했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난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힘의 논리, 경쟁의 논리가 인간을 불우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다.
사람들이 삶에서 배워나가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며,
서로 같다는 것을 느끼며 서로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좌파우파, 전라도와 경상도, 한국과 일본, 남자와 여자, 지균과 수시, 공대와 의대, 문과와 이과,......
이렇게 서로를 끊임없이 분절적으로 나누는 데에서 벗어나,
모두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가 강렬하게 가지는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
‘공감’
지금 멘토링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느낌에 따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세상에 어떤 형태로 전파가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결국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그 세상에는 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의 힘이 힘에 대한 사랑을 이길 때 세상은 평화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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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압박을 싫어한다. 그래서 해야될 일과 하고싶은 일이 있을 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해야될 일을 맡긴 후일을 맡기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해버린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 같으면 내일부터 해야지 하고서는 오늘은 인터넷 서핑을 하고 노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지금 압박감에서 도망쳐버린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 ‘미래의 나’가 해야될 시기가 오면, 우리는 또다시 한번 더 미루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의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자아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해야 할 일을 미뤘지만, 정작 다가오면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다가 최후의 순간에 와서야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난 이것을 막는 장치로서 난 이전 칼럼에서 ‘자기제어장치’를 소개했다. 자기제어장치란 시간이 흘러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가 되었을 때, 일을 미루지 못하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안철수 교수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미리 해버리겠다고 공언을 함으로써 ‘미래의 나’가 그 약속을 지키도록 했다.
하지만 난 그 칼럼에서는 ‘이런 자기제어장치’가 있고 자신을 잘 파악하여 만들면 된다고만 말을 했을 뿐이었지, 어떻게 구체적으로 자기제어장치를 만들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기제어장치를 만들 수 있을지, 그 실전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사실 자기제어장치는 나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 난 이미 수능을 치고 대학까지 졸업한 대학원생;;;이 되었지만,그렇기에 오히려 자기제어장치가 더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고등학교 때는 감독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하루의 80% 를 차지한다. 그에 따라 내 자신을 컨트롤 해야 할 책임은 더 커졌다. 그래서 난 더욱 확실하고 효과적인 자기제어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번 글은 그 심사숙고의 결과다.
자기제어장치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하고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좋지 않은 것을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이를 ‘억제적 자기제어장치’ 라 부른다.
둘째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하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이를 ‘강제적 자기제어장치’라 부른다.
이 두가지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1)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경우 : 억제적 자기제어장치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괴물로서, 상반신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하반신은 새의 형상을 띠고 있다. 그녀는 시칠리아섬 근처의 작은 섬에 살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유인하여 파멸시켰다고 했다.
트로이전쟁 후 귀국길에 오른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이 있는 곳을 지나쳐야만 했다. 오디세우스는 이때 꾀를 부려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도록 하고, 자신은 배를 돛대에 묶어 놓게 했다. 사이렌이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을 때 부하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묶인 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배는 그 유혹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미래의 나’가 노래를 듣고 미쳐서 유혹에 빠지고 싶은 상황을 예상하여, ‘현재의 나’가 돛대에 포박을 해놓도록 자기제어장치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억제적 자기제어장치의 대표적인 예이다.
자, 그리스 신화 때에서 지금으로 시간을 돌려서 실생활로 옮겨와보자. 우리 생활에서 이런 자기제어장치가 필요한 유혹거리는 무엇이 있을까? mp3, TV, 컴퓨터, 핸드폰 게임, 친구와의 수다, 라디오 듣기, 팬픽(?), 잠 등등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는 남는 게 없어 후회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일단 나같은 경우는 이런 것들에서 자기제어 장치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그리고 여기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집에 오면 잠옷을 입지 않는다.
잠옷을 입으면 몸이 나른해지고 자고싶어진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다.
-침대가 없는 곳에서 공부한다.
침대를 보면 자고싶어지고 쉬고싶어진다. 그 유혹을 참고 계속 공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그래서 아예 난 침대가 없는 곳에서 공부한다. 공부해야 할 때가 되면 침대가 없는 방에 가거나,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서 한다.
-컴퓨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공부한다.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를 키고 싶고 컴퓨터가 켜져 있으면 괜히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싶어진다. 아예 없는 곳으로 가서 공부한다. 컴퓨터를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둬야 하는 경우(=프로그래밍 과제 같은 거 할 때)에는 인터넷 선을 뽑아버렸다.
이런 방법은 현재까지 쓰인다. 현재 난 연구실에서 지금 컴퓨터를 앞에 두고 하루종일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여간 큰 곤혹이 아니다. 그럴 때는 컴퓨터 전원을 끄고 마우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우고 키보드를 뒤집어 놓는다. 키보드나 마우스가 보이면 괜히 조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mp3를 가져가지 않는다. 핸드폰은 꺼놓는다.
현재의 나는 mp3를 가져가서 적절히 자제하면서 들어야지 하고 희망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나는 절제를 못하고 계속 좋아하는 음악만 들으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핸드폰 역시 필요할 때만 써야지 생각했지만, 갑자기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면 친구에게 문자를 한다. 그래서 난 공부를 할 때는 mp3를 가져가지 않고, 핸드폰은 아예 꺼놓은 다음에 가방 속에 넣어놓는다.
이런 억제적 자기제어장치의 주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마음은 원하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흔히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곧바로 행동해서’ 그렇다. 오디세우스가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삘 받은 대로 사이렌에게 갔다면 오디세우스는 조금은 초라한 영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침대가 앞에 있는 대로 삘받아서 잠을 자버리면 낮잠을 너무 많이 자서 시차가 바뀌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괴로운 하루를 보내기 쉽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우리의 지각범위 바깥으로 떠미는 것, 그것이 자기제어장치의 시작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 포인트가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우리가 공부에 수도없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기자신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에서도 공부 잘할 것 같다고? 적절히 TV보면서도 공부 잘할 것 같다고? 컴퓨터 하면서도 공부 잘할 것 같다고? 현재의 나는 매번 그렇게 믿고 공부를 시작하지만 미래의 나는 허구헌날 그 유혹에 넘어가버리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희망을 품지 않고 만약 유혹과의 접촉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면 그것은 훌륭한 자기제어장치가 된다.
2) 뭔가를 해야만 하도록 제어하는 경우 : 강제적 자기제어장치
흥미로운 사례, 당신도 놀랄 만한 사례를 하나 말해주겠다.
당신은 혼자 있을 때 밥을 더 많이 먹는가, 아니면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밥을 더 많이 먹는가? 음...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위장의 크기는 정해져 있으니 밥 먹는 양은 혼자 먹을 때나 둘이 먹을 때 똑같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많을수록 밥을 먹는 양이 더 많아진다. 특히 4명 이상과 함께 먹을 때는 혼자 먹을 때보다 무려 96%나 많은 양을 먹는다. 거의 두배 가까이 먹는 것이다!
이건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우리의 신체기관은 생존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필요할 때에 최대한 많이 먹도록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 혼자 밥을 먹을 때에는 먹을 양이 경쟁자에 의해 위협당할 일이 없기에, 많이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일정한 음식물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최대한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더 많이 먹은 것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유추해보면 공부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아마 실험을 해보면 입증이 되겠지만,내 경험으로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부할 때 더 오랜 시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노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독이 되겠지만) 아마 경쟁자가 눈 앞에 있고 이 사람 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많이 했을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 역시 공부를 할 때는 반드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내 기숙사 방에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침대는 있다) 공부가 잘 안된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스터디룸에 가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된다. 그곳의 학구적인 분위기가 나를 자극해서 더욱 공부를 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도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공부를 하길 바란다. 실제로 이렇게 하면 본능적으로 경쟁심이 생기는데, 이 경쟁심은 나쁘게 작용하지 않고, 여러분의 잠재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학원을 다니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것이다. 학원에 가면 더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 감이 오는 것 같은가?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에 언급했던 안철수 교수의 사례를 다시 가져온다. 좋은 사례라서 다시 봐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못믿는다. 그냥 놔두면 얼마나 풀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안다. 반면 난 책임감은 굉장히 강하다. 난 이 점을 이용해서 나를 풀어지지 않게 만든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최신 컴퓨터 정보, 최신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 때 썼던 수법이 있다. 미리 잡지사에 전화를 하여 (자신이 모르는 ) 새로운 이슈가 되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쓴다고 무작정 약속을 해 버린다. 그 후 그 약속을 지키려고 고생고생해서 글을 쓰고 나면, 그 분야에 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 수준이 된다. 즉, 미리 대외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뭔가를 강제로 하게 하기 위한 좋은 자기제어장치는 사회집단의 압박을 이용하면 좋다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가 미리 원고를 쓰겠다고 약속을 공포하는 것도, 안창영 공신이 도전 과제를 한 것 또한 이런 것을 활용한 것이다.
이런 것과 비슷한 미국의 한 TV프로그램도 있다. 그곳에서는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집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살 찐 (벌거벗은) 모습을 촬영한 뒤, 앞으로 3개월 안에 살을 못빼면 지금 찍은 이 모습을 TV로 공개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쪽팔려서 악착같이 살을 뺀다.
위 사례는 사회적 압박이 얼마나 강력한 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시사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나태해지지 않게 하고 의지력과 실천력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적용하면 좋겠는가? 한가지 예를 들자면 담임 선생님께 가서 공포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 기말고사 때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기로 약속한다고 말이다. 만약 들지 못하면 매를 맞거나 성적을 공개하겠다고 말이다. 실제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랬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구? 비밀이다. ^^
여기까지 두가지 자기제어장치를 설명했다. 이 자기제어장치들은 비인간적이고 차갑게 보일 수도 있다. 공부만을 하게 하고,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난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서 멋진 성과를 낼 때 진정으로 뿌듯함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인간다움이다. 오히려 원하는 일만 하고 퇴보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이지 못하다. 골방에 갇혀서 잠만 자고 매일 게임만 하는 것이 과연 인간적일까? 난 그런 상태일 때 삶이 마치 엉망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나와 당신은 똑같은 인간이기에 다르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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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subtitle -> Korean 으로 해서 보세요..!)
(Carrots and Sticks Don't Work.
왜 당근과 채찍이 소용없는지 얘기하며 대안을 얘기하는 책입니다.
한국어로는 아직 번역판이 안나왔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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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상준 선생님께 배우는 문법들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역사를 아예 통째로 획기적인 바꿀 문법들입니다.
-성문류의 100년된 언어학을 싸그리 통째로 바꿀-
박상준 선생님에 대한 정보는 http://readingtheory.com 에 가서 확인해 보셔도 되고..
아마 '해석이론'이라는 이름의 책이 올해 안에 나오니 이 책을 구입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알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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