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삶이 비록 당신을 속일지라도' 중 일부를 참고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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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끼리 대화하다 흔히 듣는 말 중 하나에
'입시 준비할 시절이 도리어 좋았다' 는 감상이 있다.
그 고생스러운 시절이 좋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기에
오히려 사람들 입에서 많이 나와
흔히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때는 '지루하고 견딜 수 없는 입시 공부'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그 입으로 ,
친구들과 함께 야자시간에 당면의 고민 등을 털어놓고 얘기함에서 즐거움이 있었다 하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입시 지옥이라는 것과는 달리
그런대로 행복하게 지냈다고들 한다.
'나는 재수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밤이되면 맹렬한 초조감으로 견딜 수 없는 나날이었다.
밤중이 되어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못 이루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졸음이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나는 정말로 고독했다'
하고 말하다가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시련 속에 있었던 그 무렵이 대학생이 된 지금보다도 더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분명, 재수하고 있던 그때가 분명히 사는 보람이 있었다'
라고 한다.
이와같이 하여 대학에 들어가면, 입학한 지 얼마 안되는 4월, 5월은 거의 다 멍한 상태로 그날 고날을 보내게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학생은 대학 합격이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 그날이 충실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규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대학 합격이 참다운 '목적'이라면 어째서 대학에 들어와서
'피곤하다' '맥이 빠진다''뭘 해야할지 모르겠따' '멍하다'
이런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인가.
대학이 목적이라면 합격한 후에는 희망에 불타올라 학문에 몰두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
누구나 다 조만간 자기 인생의 계획을 세우려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우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고학력자가 사회적 강자이고, 저학력자가 사회적 약자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
그의 말을 요약하건대,
대학 합격이란 것은,
안이하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으냐 하는데서 나온 '목적'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목적'이라고 하기 보다도
최종적 목표로서의 안이한 생활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게다...
이것은 내가
21살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들어간 뒤의 생활과
25살 카이스트 지식서비스공학과를 들어간 뒤의 생활을 그대로 드러낸다.
난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솔직히 말하자면 '간판' 때문에 갔다.
(물론 그 외의 이유도 있다. 진로 선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두가지 이유가 각각 반반 정도 차지한다. )
즉, '안이한 생활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재수생활을 추억하며 그때가 더 행복했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이스트 지식서비스공학과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갔다.
현재 학교 생활을 너무나도 행복하고 매일매일 가슴이 뛴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고 토론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지 몰랐다.
이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수단'보다는 '목적'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단중심의 삶을 살면 잠깐은 편안할 수 있고 인정을 받는 데는 성공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다.
수단중심의 삶은 '타협'이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반면 목적중심의 삶은 수단중심이 얻는 혜택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이 행복하며 만족스럽다.
목적중심의 삶은 '개척'이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난 목적중심의 삶이 보다 낫다고 본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남이 좋다는 것을 충족하며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낫게 살려고 하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