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상담을 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고 공감을 하고 답글을 다는 과정은
시간적인 투자 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신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저에게 또 다른 힘을 줍니다.


대학원에 오고 나니 하루하루가 제가 얼마나 많이 부족한지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저는 매일 말하지만,
정작 저는 저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거의 잊은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니 매일 자책하게 되고,
시간에 쫓기니 매일 조급함에 빠지게 됩니다.
멍하니 연구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죄를 짓는 듯 하고
뭔가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내기라도 하면 그제서야 제가 인정을 받은 듯이 우쭐해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성과가 없으면 초조해지구요. 
그러다보면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는 것은 저에게 힘을 줍니다.
최소한 제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깨달음은 제가 다시 힘을 내어 발걸음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상담을 하니 다시 힘이 솟습니다.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 또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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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바늘은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 전에 항상 흔들린다.

인생도 그렇다.
그러므로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바른 방향을 가리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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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닷컴을 한 세 달 정도 이상 이용하신 회원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어떤 유형의 상담글이 가장 많이 올라오는지.....

 

"모의고사는 언어 2등급 수리 4등급 외국어 3등급 정도 나오는데..충남대나 전북대 국문학과 갈 수 있을까요?"

"한의대에 합격할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시작해도 올1등급 바라볼 수 있을까요"

등등...

 

1. 여러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런 질문글들 올리시는 후배님들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정말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그런 '불안감' 때문에 누군가에게 확신을 받고 싶은 심정....

저는 무려 2년 동안이나 그런 '불안감' 속에 살았습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그런 생활을 해서,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이라면 저런 질문에 어떤 식으로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런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닌 이상.....)

 

만약 긍정의 답변이 올라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여

잘못된 희망을 품고 공부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자기합리화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만약 부정의 답변이 올라오면,

여러분들은 더욱더 좌절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안 되는걸 왜 하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여,

공부가 점점 더 힘들것입니다.

 

2. 안 된다고 하면 공부 안 할 겁니까?

위의 질문들에 대해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가정합니다.

그렇다고 공부 안 할 겁니까?

주위 친구들은 다 고3이라고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데.

아마 같이 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수험생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고3'이라는 그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런 질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아시겠죠?

어떤 답변이 올라와도 여러분들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을테니까요.

여러분들은 어찌되었든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고, 수능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다들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졸업하실 거잖아요?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국 공부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N수생들에게는 허용(?)이 됩니다.

원래 희망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일단 학교를 등록한 반수생들,

공부 말고 다른 진로를 찾은 학생들,

아직 대안을 찾지는 못 했지만 그래서 찾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은 본인의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주시면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따지고, 몇 년 더 인생을 산 경험을 보태서 조언을 해 드릴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3 여러분들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상황보다 나아질 생각을 해야지,

현실과 타협하기에는 아직 여러분들에게 희망은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3. 두려움은 상상력 때문입니다.

 

 

 

 

"있잖아.....사람은 말이야.....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그러니까.....상상을 하지 말아봐.....X나게 용감해질 수 있어"

 

여러분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 소름 끼치도록 싫은 '불안감' 때문입니다.

"수능 못 보면 어떡하지?"

"원하던 대학 못 가면 어떡하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렇게 실패를 가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가 됩니다.

저런 생각들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하면 성공할 일을,

저런 걱정들 때문에 그르치기도 합니다.

 

겁내지 맙시다.

우리 앞에 닥쳐올 시련들을 겁내지 맙시다.

우리의 가능성을 믿읍시다.

우리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공의 씨앗을 믿읍시다.

상상하지 맙시다.

우리가 실패해서 좌절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지 맙시다.

희망을 잃지 맙시다.

어떠한 역경에 부딪치고 힘든 일이 닥쳐도 가슴 깊숙히 품은 희망을 잃지 맙시다

 

 

 

제가 위의 여덟 문장을 모두 청유형으로 썼습니다.

이는 곧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참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항상 뭔가에 쫓기고,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곧 자신감 결여로 이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걸었던 길을 걷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또 앞으로의 저 역시 이러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지금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해봅시다.

내가 지금 이렇게 두려울만한 일을 하고 있다

라고......

그리고 그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얼마전 칼럼을 통해 이종민 공신님께서도 말씀하셨죠. 공부 힘듭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겁니다.)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상상을 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두려움을 없애라!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할테니 최소화된 두려움은 그대로 둔 채 도전(공부)하라!

 

두렵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4.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 필요한 건 '격려'인 것 같습니다.

수험생활이라는게 늘 불안정하고

다가올 미래는 불투명하고

현재의 나는 불완전하고

이러한 심리 때문에 누군가에게라도 확신을 받고 싶어하죠.

누군가가 내 성공을 장담해준다면 그것을 믿도 더 열심히 할수 있을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저런 유형의 모든 질문에 대해 한꺼번에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5. 꿈★은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연구결과 하나 소개해드릴게요.

영국의 유명한 정신병리학자 J.A. 하드필드는 <힘의 심리>라는 저서에

정신적 암시가 물리적 힘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보고서를 실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조건에 따라 악력을 측정한 이 실험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 번째 실험 대상자들(대조군)의 평소 악력을 재었더니,

평균 악력은 101파운드였습니다.

두 번째는 실험 대상자들(실험군A)에게

'당신은 약하다.'

라는 암시를 준 후 악력을 재었더니,

3분의 1 이하 정도의 힘밖에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실험군B)으로

'당신은 강하다.'

라는 암시를 준 후 악력을 재었더니,

평균 악력은 142파운드에 달했다고 합니다.

 

제가 4번에서 세 번이나 주문(?)을 외면서

여러분들을 위 실험의 실험군B로 만들어드렸습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표준점수 500점을 받고 계신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700점까지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겁니다.



자성예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99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머튼이 사용한 용어입니다.

이는 기대한 만큼 결과를 얻는 힘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과 압박감은 고이 접어 하늘 위로 날려버리고,

다짐이나 소망을 적어 외우면서 자신의 일부로 삼아 봅시다.

여러분들은 분명 이루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힘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는 강력한 실천의지입니다.

실천 없이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입니다.



'R=VD'라는 말이 있지요?

워낙 유명한 말이기는 하지만,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이 설명 드리겠습니다.

R: Realization 현실화, 실감, 취득 등을 뜻합니다.

V: Vivid 생생한, 강렬한, 선명한 등을 뜻합니다.

D: Dream 꿈, 희망, 멋진 것 등을 뜻합니다.

이 공식은 「꿈꾸는 다락방」(이지성 저)에서 나온 공식인데요,

생생하게 꿈을 꾸면 꿈을 이루게 된다는 말입니다.

앙드레 말로가 한 명언,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공식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173일.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모든 희망이 열려 있습니다.

정말,

분명히,

반드시,

성공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글입니다. 수용과 실천의 여부는 후배님들 각자의 몫이고, 다른 좋은 의견이 있으면 댓글로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공신은 올바른 학습법을 대한민국 모든 후배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합니다. 공신의 글은 출처와 글쓴이를 밝히시면 블로그, 카페 어디든 퍼가셔서, 공유하고 보관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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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고 부서질 때 난 거친 바람 위로 균형잡는 작은 새

두렵기만 한 내일 기록할래 My Name 나만의 Hall Of Fame

음악[수능]이란 쪽배 타고 꿈을 쫒네 하루 종일

내 인생은 조각 구름 저어가는 종이배


등지게를 등에 지고 밀항하듯 짚신발로

지긋이나 지르밟은 집념이라는 지뢰

지팡이도 없는 삶 지탱할 곳 없는 나

잃어버린 지휘봉과 지구력을 지명 수배

지푸레기 같은 삶 지렛대를 찾는다

그대라는 지렛대는 지금 어디를 보는가?

흰눈 저어 발을 딛는 말이 없는 발걸음

그 누가 알까 발병이 난 영혼의 발악과 발버둥

때가 되면 잊어줄까? 이 광끼어린 발작을

지금 내게 필요한건 함께 걷는 말벗

이룬 것과 잃은 것 잊은 것과 이끌린 것

이제는 되돌아가려해도 네게로 갈 수 없는 건

역행하듯 살아온 내 수많은 오류 때문에

그대를 보내고 떠나는 이 자유로운 여행

해는 지고 어제와 같이 난 또 일어나죠

폐는 지독한 담배 연길 가득 머금고

날 가둔 거울속 초라한 그에게 묻죠

핏기없는 입술 살짝 찡그리며 웃죠

괜한 일에 화만 늘어나 친구를 잃고

계산적 성격탓에 아무도 안믿고

내가 쓴 일기 속 수 많은 날의 기도

마치 괄호쳐진 비고 아직 찾지 못한 빙고

삶은 마치 술래 늘어난 건 허리 둘레

스스롤 가둔 작은 틀에 꽉 묶인채 서글프게

눈물 흘려 보이진 않겠지만 흘려 들리지 않겠지만

불러 풀리지 않기에 또 숨어

불투명해요 불분명해요

불완전해요 불안정해요

기억이란 미련 의연할수 없는 가여움

지워진듯 잊혀진 버리진 못한 꿈

힙합[삼수]이라는 편도 열차표를 끊고 뜻을 펼치고자

파란 하늘 새들처럼 날갤 펴고

수많은 편견과 편애 서글퍼도 나는

끊임없이 퍼덕이네 비록 어설퍼도

삶이 고달퍼도 뒤섞인 퍼즐을 맞추고

불편했던 표정 지평선 너머로 감추고

욕심 좀 더 낮추고 마음의 평온 갖추고

춤을 추니 시련조차 내게 입을 맞추고

매일 나를 감춘다 내일은 달라질 수 있을까?

눈물도 말라 작은 꿈마저 내겐 사치인가

꽉진 주먹 앙다문 입술 땅에 떨군 나의 눈물

늘 그랬듯 실패 상처는 또 내것인가

미워하면 미련은 지워지는 걸까?

기도하면 기회는 다 내게 오는 건가?

매일 이별하는 삶에 차츰 익숙해져가

깊숙이 패인 상처도 언젠간 아물겠지만

-----------------------------------

레알 음유시인 MC 스나이퍼.

내 생활과 미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가사의 Break Away.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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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잘 가르쳐주는데, 나는 잘 안되네...

 

 

 

쉬는시간이다.

 

 

19_58_25.jpg

 

 

 

 

 

친구가 수학에서 슬럼프가 왔다며,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냐며 상담을 요청해 온다.

공신에서 봤던 글이 문득 떠오른다.

그 글의 내용을 인용하며 수학 공부법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6월달까지는 개념을 하면서..문제를 반복학습하고.."

친구는 어디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냐며 매우 고마워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간다.

자기 자신도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수학 공부를 할 때에는 불안하다.

인강에서 수학 공부법 정보를 얻고, 공신 사이트에서 수학 공부법 글은 봤는데,...

여러가지 공부법 중에서 어떤 것이 과연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해 나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친구에게는 그렇게 잘 말하면서...왜 정작 나는 헷갈리고 있을까?

 

 

 

 

학원과 독학의 차이

 

한 재수생이 있다.

그는 학원은 안다닌다.

학원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가르친다. 자기 공부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는 매일 시립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

3월달까지는 수학2를 다 끝내놓기로 계획을 짰고, 결국 어제 다 끝냈다.

그리고 오늘 도서관에 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 뭘하지? 개념공부를 6월달까지 하라 했는데 계속 개념공부 해야 하나? 뭐가 부족한지 잘 모르겠는데... 새로 인강을 하나 들을까?

이번에 수능 잘봐야 하는데...공부법을 좀 더 알아볼까?'

독학을 하게 되면 보통 겪게 되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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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수학원에 다니는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할까?

별 생각없이 학원 진도에 맞춰서 생활을 해 나간다.

같은 시기, 그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오늘 조두식 쌤이 행렬 숙제 내줬는데... 이따 저녁먹고 6시부터 8시까지 하면 되겠다! 빨리 해야지!'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재수 학원을 다니는 사람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

그래서 지금 하는 과정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다.

하지만 독학 재수를 하는 사람은 자꾸 이게 맞는지 틀린지 헷갈린다.

 

만약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어떻게 될까?

끊임없이 고민을 하던 독학 재수생은 방황하다가 약점도 보완 못한 채 수능 시험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학원 선생님의 말만 믿던 재수생은 작년 수능보다는 높은 점수를 딸 확률이 높다.

 

이래서 독학 재수를 하는 사람은 완전 성공 아니면 완전 실패이고,

학원을 다니면서 재수를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성적이 오르는 것이 보장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독학은 주변의 견제가 없으니 올바른 공부법을 적용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오랫동안 꾸준히 지속하기가 힘들다.

반면 학원은 완전 올바른 공부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우나, 학원을 믿고 따른다면 1년동안 공부를 더 했으니 성적 향상은 기대할 만 하다.

 

사실 이것이 학원의 진짜 장점이기도 하다.

"별 생각 안하게 해주는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태까지 선택을 고민해 왔다.

어떤 식으로 , 어떤 문제집으로, 어떤 선생님을 고르는 것이 최적화된 방법이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지금 당신이 공신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는 이유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앞서 두 예를 다시 짚어보자.

친구에게 상담을 쿨하게 해주던 당신, 그러나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학원만 믿고 다니면 실패한다고 생각했던 당신, 그러나 너무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계획을 잘 못짠다.

 

중요한 것은, 공부법을 많이 안다는 사실도 아니고, 옳은 공부법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가르쳐줬던 친구는 당신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 말대로 실천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공부도 잘된다.

학원에 다니는 재수생은 학원 커리큘럼을 믿고 가니 쉽게 흔들리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다.

이것은 남이  말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믿고 따른 덕분에 얻은 결과다.

 

그런데 자신이 할 때는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꾸 고민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신념'이다.

남이 말해서 믿었듯이, 자신의 공부법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나 역시 재수생 때, 그러니까 5년 전에 내 공부법이 맞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6월 모의고사 물리 성적은 30점 대, 5등급이었다. 난 계속해서 기본만 파고 있었다.

이게 맞나 틀리나 계속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나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내 공부법이 맞다고 생각하고, 11월달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11월이 되었다. 3월달부터 다져온 기본기가 11월달이 되니 발휘가 되기 시작했다.

난 물리 20문제를 평균 13분 안에 풀고 거의 틀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능에서는 물론 다 맞았다.)

그 때 만약 내가 공부법을 바꾸고 이리저리 고민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신념을 가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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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위 부분까지 서술하고 글을 끝내면 그건 70점짜리 글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아 .. 알았어 !" 하고 말하지만, 정작 실천하는 데에 도움은 주지 않는 글이 될 것이다.

신념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은 말했지만, 어떻게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지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점은 못되어도 80점짜리 글이 되기 위해 신념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지 말하려 한다.

 

 

앞서 두 예시를 다시 생각해보자.

친구에게 수학 공부법을 잘 가르쳐줬지만, 정작 당신은 헷갈리고,

학원은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했지만, 정작 당신은 효과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1)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2) 많은 것 중에서 선택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경영을 하거나 주식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나 진로를 결정할 때에나,

인생 어디에서나 이런 경우는 많이 발생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선택을 하기 위해 얻은 정보가 선택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다.

A 라는 선택안이 있지만 B라는 선택안의 장점이 아쉽고,

B를 선택하려 하자니, A가 아쉬운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1)먼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신이 아닌 이상, 최적의 선택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2)다음으로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과감하게 택해야 한다.

최악의 선택은 선택 가운데서 갈팡질팡 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택하라.

 

 

3)그리고서는 그것이 맞다고 믿어버려야 한다.

마치 신에게서 계시를 받은 양 말이다.

본질적인 인간의 불완전성을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무지한 믿음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다.

 

 

4)마지막으로는 그 선택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래서 what 보다는 how가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은 그 선택 자체보다도, 선택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이다.

 

 

 

 

 

앞서 예시를 다시 생각해 보자.

독학 재수를 할 때 성공한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서 신념이 약한 사람들은 아무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불완전함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결국에는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믿는다' 라는 말의 메커니즘이다.

선택에 대한 포기 없이,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 없이, 자신을 절대 믿을 수 없다.

 

포터.jpg

차선책의 완벽한 실행이

최선책의 불완전한 실행보다 낫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결국 삶은 이런 선택과 실천의 연속이 된다.

분별있는 선택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가치있는 선택을 과감히 내리며, 그것을 의미있게 실천하며, 최종적으로 평가해 나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와 성공요인이 모이게 되고

그것이 일반화가 되어 자신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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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부터 지금까지 6년동안 '공부법'에 관해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초반에는 과목 공부법, 수능 공부법 위주로 가다가 작년부터는 마음가짐에 대해 주로 써 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저는 제가 공부법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 자신은 부끄럽게도 공부를 잘 못하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험 전날 공부는 안하고 공신닷컴에 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_-ㅋ;

사실 이런 현상은 저한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상담해주는 다른 여러 전문직 종사자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주식 상담사인데 정작 본인은 주식으로 큰 돈을 벌기는 커녕 쪽박을 찼다든지,
부부관계 상담사인데 정작 자신은 이혼을 했다든지 하는 등입니다...

이렇게 이론은 항상 자기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솔직하게 인정하는 자기모순적인 부분입니다.
다음과 같은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조금 더 합리적으로 공부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아는 순간 이미 아는 것처럼 만족하게 된다.

공부법을 알게 되면 이미 자신이 뭔가를 잘하게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수학을 못하는 학생도 수학 공부법을 보게 되면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서는 이미 수학을 잘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즉, 섣부른 성취감을 느끼면서 만족하게 된답니다.

(예전 칼럼에서 쓰기도 했었습니다...^^; "빈수레가 요란한 이유" http://bit.ly/lFqi8p)


부끄럽지만 저 역시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의지력 관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그 글을 쓰고 나면,
전 이미 의지력에 대한 관리법을 마스터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어,
오히려 이상하게 전보다 더 허접하게 관리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선 이론과 실전을 철저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머릿속으로 공부법 이론을 알지라도 이게 실제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제 현실에서 그 이론을 통해 '변화'와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시행착오를 덜 겪게 만들어서 깨달음의 깊이를 낮춘다.

많은 사람들은 최단경로를 좋아합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테크트리를 짜듯이,
진로계획을 짤 때도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많은 돈 (또는 스펙)을 쌓으려고 계획을 짭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단경로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최단경로로 가면 시행착오 경험이 부족해서... 
계획했던 것과 약간의 다른 상황이 나와도 당황하게 되고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지문 분석법 중에서 가장 좋은 법을 찾아서 공부하다가도,
보통 보는 지문과 다른 형식의 지문이 나왔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자꾸 두번 세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자꾸 자기가 하는 것이 맞는지 회의가 들게 하게 됩니다. 
자꾸 더 나은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법을 '배운 것'에 대한 맹점이죠.

공부법에 대해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낸 '결과'입니다.
그들은 시행착오의 '과정' 중에서 '깨달음'을 얻고 '결과'를 서술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공부할 때 제대로 해석하지 않고 단어만 보고 대충 퍼즐 끼워맞추기 식으로 공부하다 피본 경험이 생기면,
하나하나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고, 
나중에 결과가 좋으면 그에 대한 영어 공부법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공부법 글에는 그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의 시행착오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부법을 우리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런 영어공부법을 볼 때,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의 경험(=퍼즐 끼워맞추기 식으로 하다 피본 경험)이 없기에, 
그 공부를 하다가도 '이렇게 천천히 영어문장을 읽어도 되나' 하는 회의가 듭니다.

시행착오 과정에서 생긴 깨달음이 없기에, 
자신의 공부법에 대한 확신이 없게 되고, 
자꾸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공부법 저 공부법 기웃거리게 되다가...모든 것에 대해 회의가 생기죠.




이런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시행착오는 선택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가장 빠른 길, 최고 빠른 테크트리가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시행착오가 있어야 공부법을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의 과정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알려주는 아주 좋은 지침서입니다.
다른 사람이 쓴 공부법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환경에서 나온 특이한 '스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스킬을 자신에게 적용하려면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에 맞게 변형/적용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잠 5시간 자는 것을 실천했는데 그대로 되지 않다가 7시간 자면서 하니 잘되었다면,
'나는 7시간은 자야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가지 더 조언을 하자면, 글을 읽게 된다면 그 글에 반드시 '과정'이 담겨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의지력을 발휘해라! " "많은 공부를 해라!" 식의 '선언적' 공부법은 일시적 자극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지만 그런 메시지 안에 자신의 시행착오 '과정'을 담은 글은 좋은 참고사항이 됩니다.
(특히 실패한 글들을 많이 찾아보시면 좋습니다.)




3. 공부법을 인식하는 순간 집중상태가 깨진다.


"제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전 집중에서 흐트러집니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미국의 여 배우인 맥 라이언이 한 말입니다

공부에서는 집중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무아지경의 몰입상태(flow)에 빠져서 시간감각을 잊고 그 상태에 빠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부법을 아는 것은 이런 몰입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과목 공부법 보다도.. 제가 주로 쓴 '마음가짐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를 들어 '겸손해야지' '불만족해야지' '몰입해야지' 하는 것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됩니다.
자꾸 공부법 의식을 해서 내가 이론대로 하고 있는지 체크하게 되고...
이게 집중상태를 깨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공부법을 잊어버리세요.
저 역시 마찬가지로 기존의 제가 만든 이론들을 부숴버리고 현재의 흐름에만 맞췄을 때
가장 공부가 잘되었습니다.


결국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이론은 사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론은 실천 중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헤맬 때...간접답안을 제시해주는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4. 과거를 미화한다

시중에는 많은 합격수기 책들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대부분 '사건 중심'으로 쓰여졌습니다.
그 글만 보면 마치 영웅 일대기를 보는 듯하며, 모든 사건이 운명적으로 일어나죠.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탕입니다. 
사랑에 빠져서 흔들리고 점수에 울고 다시 3시간 자면서 공부해서 대박역전을 이루어냅니다.
화려하죠.


하지만 실제 공부 해보면 그런가요?
최소한 전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의미있는' 사건도 일어나긴 했지만 그건 전체 경험 중에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매일매일은 지극히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같은 장소에 앉아서 전혀 화려하지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도 연구실에 앉아서 전혀 화려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ㅠㅠ)
지루하디 지루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마저 부러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미화시키는 현상은 합격수기 뿐만 아니라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별 생각 없이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억을 미화시켜서 
마치 엄청난 의도를 갖고 대단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사람의 기억과 경험이 다른 데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참고: 공부법을 아는데도 실천을 못하는 이유 http://bit.ly/lVBZJu)
부끄럽지만 저 역시도 미화시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저의 합격수기를 포함하여...ㅋㅋ 
합격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보고 그대로 해서 될 리가 없습니다.

합격수기를 보시게 되면 거기에 있는 운명적인 일들은 싹 다 빼고....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정도만 조금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네 가지 맹점의 공통점은 바로,
공부는 지극히 실천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탈 때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잘 알아도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탄 경험이 쌓인 이후에 이런 저런 이론을 알면 조금은 도움이 되겠죠.

공부 역시 일단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경험이 쌓인 이후에 이론을 알아야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결론은..
공부법 다 잊어버려도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실천이니, 일단 계속 꾸역꾸역 해야 합니다.



Posted by 박현수4s
,
공포에 도전하라.
꾸준히 노력하면 공포의 두께는 점점 얇아지고,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초보자일 때는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 실패는 숙련자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작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라.
그러면 작은 성공이 다가온다.
작은 성공부터 시작하라.
성공에 익숙해지면 무슨 목표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데일 카네기]
 
 
 
 
작은 희열이
작은 성공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희열이 없으면 끝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작은 희열은 작은 성공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공이 모든 것입니다.
 
 
 
 
어색한 포즈의 모범생 머리 동양인이 보이십니까? 저랍니다ㅋㅋㅋ
이곳은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입니다.
 
시애틀에는 200개가 넘는 스타벅스가 있고
심지어 한 건물 안에도 스타벅스가 두 개 있는 곳도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세계적으로 키운 사람은
이곳 수산물 시장(Pike Place Market)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의 바리스타였습니다.
우연히 맛본 스타벅스 커피에 매료되어서
하던 일을 팽개치고 이곳의 종업원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약간 이상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스타벅스의 커피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고
스타벅스의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심각한 착각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스타벅스의 커피는 
'너무 달고, 먹고 나면 거북할 정도로 양이 많은 커피'에  불과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그저 '카페'
그것도 해산물 냄새가 폴폴 풍기는 시장 앞에 있는
몇 평 되지 않는 동네 커피숍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사내는 스타벅스의 커피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이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심'이라고 혼자 믿어버리고 들떠 버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 신념이
정작 스타벅스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어필되지 않는 것입니다.
 
종업원은 스타벅스가
세계의 커피숍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주인은 시큰둥한 것입니다.
그는 스타벅스를 만든 사람보다
스타벅스에 대한 더 큰 자부심과 환상이 있었던
이상한 종업원이었던 것입니다.
 
답답해진 그는 결국 스타벅스를 나와
몇 개의 카페를 만들고 이 성공을 기반으로
스타벅스를 인수해 자신의 꿈처럼 스타벅스를 세계인의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저는 스타벅스의 커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커피를 마실 때면 언제나
한 바리스타의 꿈을 떠올리게 됩니다.
강한 자부심과 주변 사람을 거북하게 할 정도의 긍지를 읽게 됩니다.
 
자기가 발견한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숍에 들어가기 위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바리스타가 된
한 고집 센 사내의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큰 성공도
작은 성공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성공에서 희열이 생기지 않으면
큰 성공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맛있는 커피을 발견했기에
하던 일을 그만 둔 것이
 
그 커피를 배우기 위해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그가 만들었던 한잔 한잔의 커피가
 
한 바리스타의 '작은 성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커피를 마시고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는 작은 희열이
그의 '작은 성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바리스타가 느끼지 못했던
심지어 가게 주인도 느끼지 못했던
그 희열이 모여 한 사내에게 큰 꿈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시간 이 공부가 작은 희열을 주지 못한다면
큰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가르치는 선생님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만의 작은 희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작은 성공입니다.
 
이 작은 성공이 모여야 공포가 사라지고 당당함이 생깁니다.
자신에 대한 회의가 걷힙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한 작은 수산물 시장 앞에서 
 
커피 한잔 한잔에 모든 정성과 열의를 쏟았던
한 명의 바리스타를 생각해 봅니다.
 
매시간 시간에서 느끼는 작은 희열이
또 그것이 모일 때 얼마나 큰 힘을 내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Posted by 박현수4s
,

 

 

 

서울대학교 일반전형 식물생산산림과학부군. 불합격.

2005년, 2월 1일. 그해 가장 추운 겨울날이었다.

인터넷 창에 나타난 이 반갑지 않은 글자들은,

이번 해에 수능을 한번 더 보라는, 그러한 받아들이기 힘든 의미를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재수다.

수능을 한번 더 봐야한다.

현역 때 죽어도 하기 싫다던 재수를 결국 하게 되었다.


440대 초반의 점수로는 역시 무리였던 것일까.

수능 전날 그 미칠듯한 초조함에 한번 더 떨어야 할 것이고, 수번의 모의고사를 다시 한번 봐야한다.

기출문제도 다시 풀어봐야 하고, 교과서도 처음부터 다시 봐야한다.

11월 17일 이후로 공부와는 인연을 끊었었기 때문에, 머리는 완전히 굳어있었다.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어서 몸 또한 많이 망가진 상태였었다.

타락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합격 발표가 난 다음날, 강남대성학원에 유시험을 보러갔지만 당연하게도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2차 모집 때, 노량진 대성학원 무시험전형으로 넣어서 대성학원 자연4반으로 배정되게 되었다.




2월 17일에 개강을 시작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초반 학원 생활은 암울, 그 자체였다.

80명정도 되는 학생들을 좁디 좁은 교실에 몰아넣었는데, 뒤에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대화도 웃음도 없었다.

서로의 눈에는 재수생의 패배의식이 묻어 있었다.

점심시간의 화장실은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어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살고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 1달간은 정말 암울하게 보냈다. 재수는 쉽게 결심해서는 안된다.


정말 많은 눈물을 참아야 하고, 수많은 아픔들은 마음 속으로 삭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수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사회에서,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인생은 고독한 것이고 혼자라는 것. 인내와 끈기.






3월 2일. 눈이 많이 내리던 날에, 나는 학원에 지각을 했다.

그리고 같은 날, 서울대학교의 입학식이 있었다.


천국과 지옥처럼 그렇게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상황에서, 나는 이를 악물며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며 치열하게 공부를 해나갔다.

다음은 3월 6일에 썼던 일기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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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생의 하루는 바쁘게 시작됩니다.

아침 7시 50분까지 교실로 들어가야 하므로,
이곳 등촌동에서는 6시 20분 정도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터질듯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손에는 도시락통을 든,
이 키 작은 학생은 의심할 바 없이 죄수생입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집니다.
-마치, 제가 재수생이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듯이, 다같이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한 반의 인원은 80명입니다.

3학년 때 교실보다 약간 더 큰 이 교실에 어떻게 80명이 들어가서 수업을 받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책상은 다닥다닥 붙어있어 뒤쪽에서 앞으로 나가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쉬는 시간에는 돌아다닐 수가 없어,
쉬고 싶을 때에는 그냥 책상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거나 잠을 자야 합니다.

노량진의 , 시멘트와 철골로 둘러싸인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이 건물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저는, 저희는 공부만 하고 지냅니다. 말할 친구도 없습니다.

재수를 시작하면서 사회를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제가 대학에 떨어지지 않고, 턱걸이로 붙었더라면, 군대갔다오고, 졸업할 때가 되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사회는 무섭습니다.

아무도 이 어린 청년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오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몇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 곁을 떠나면 ,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저는 살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학원에서는 항상 배가 고픕니다.

이곳은 전쟁터이고, 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몸이 아나 봅니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은 어찌나 맛있던지...


재수를 처음 시작할 때, 이것은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 재수를 통해서 참..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대학을 제가 만약 합격했더라면, 수능이 끝난 후 나태했던 그 모습 그대로 대학에 지니고 갔을것입니다.

하지만 재수를 함으로써 다시 원래의 서형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겸손한 태도로,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잃어버렸던 저의 열정도 되찾았습니다.

화장실 갈적과 나올적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자신이 힘들었던 시기가 다 지나면 그때의 생생한 열망을 잊기 쉽습니다.

어느정도 그 느낌을 피상적으로 상기시킬 수는 있어도, 그 느낌을 다시 완전히 느끼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전 다시 공부를 시작함으로 인해서 고등학교 때 느꼈던 그 감정들, 열정과 꿈들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부법, 인생의 목표들, 두발자유화 등....


공부를 하다보면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떠올라 혼자 싱긋 웃어봅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 같습니다.

시련이 와도 그 추억이 있으므로 모 시인의 시구처럼 희망처럼 그날을 기다리며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마음속으로 이렇게 노래가사를 읊조리며 다시 펜을 잡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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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이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반 친구들과 하나 둘씩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은 서로서로 알게되고 친해지면서 반 분위기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학원과도 친숙해졌다. 자율적인 자습 분위기와 뛰어난 선생님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대성학원에서는, 모의고사를 본 후에, 문이과로 나눠서, 학원 전체 1등부터 100등까지의 이름과 출신고등학교를 게시판에 붙였다.

이를 흔히 빌보드라고 부르는데, 학생들은 빌보드에 붙는 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했다.

이는 학생들 서로간의 공부 욕구를 더 높여주었다.







학원 생활에 익숙해진 어느 하루는, 친한 친구 한명과 야간 자율학습을 안하고, 피시방에서 스타를 했다.

피시방에서 정신없이 3시간 정도 게임을 한 뒤에, 친구와 헤어지고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서, 겉잡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몸에서는 피시방에서 밴 담배냄새가 났고, 오늘 학원에서 선생님께서 내준 숙제들이 생각이 났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가는 삼수를 할지도 모른다. 재수도 이정도로 끔찍한데 삼수는 더할 것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나는 속으로 펑펑 울었다.

담배냄새가 나는 옷과 함께 나는 그렇게 헛되이 보낸 그날 하루를 후회했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한 후, 난 굳은 결심을 했다. 고3 때처럼 공부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똑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고, 결과는 제자리가 되거나 약간 상승할 것이다.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같이 공부해선 안된다. 재수를 하는 동안에 나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4월달까지 단 한번도 야간 자율학습 (야자) 를 빼먹지 않고 모두 하기로 결심했다.

걸핏하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으로 가곤 했던 고3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이는 대단한 결심이었다.

몇일동안은 별 문제없이 그 결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아침에 머리를 감고 말리지 않은 탓인지, 감기에 걸렸다.

감기는 고3 때도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 중에 하나였다.

수업시간에는 너무나도 아팠지만 그냥 오기로 버텨내었다.

야자가 시작된 후에는 증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콧물이 자꾸 흘러서 코가 헐고 쓰라렸다. 머리에서는 열이 났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약을 먹었으나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펐다. 몸은 정말 지칠대로 지쳤다. 어리석고 감상적이었던, 어린청년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때, 집에가는 것은 나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가게되면 삼수다. 빈 자습실로 가서 책상위에 그냥 쓰러져 버렸다.

언젠간 이렇게 약을 먹고, 먼지쌓인 교실에서 아픈 채로 버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은 펄펄 끓는 듯했다.


난 내 자신과 싸웠다. 고독의 끝에서 혼자 나는 싸웠다. 여기서 지면 나는 끝장이다.
하면서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긴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3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몸은 홀가분했다. 방금 전에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열들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기분좋은 땀이 나를 적셔주고 있었다.







그 날을 고비로, 나는 4월달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야간자율학습을 나왔다.

수능 공부를 할 때, 이렇게 자신을 절제하는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 기간 동안의 공부로, 모의고사 성적이 급상승 했다는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빠른 사람들은 이미 예상을 했을 것이다.




3월달의 대성 월례고사 때의 성적은 노량진 대성 이과 2800명 정도중에서 350등 정도였지만, 4월 모의고사 때는 150등 정도를 했다.

특히나 수학 100, 영어100, 과학탐구 180점을 맞으므로, 수외과 성적으로 학원 전체에서 16등을 하고, 전국에서는 300등 안에 들 수 있었다.  




재수하는 동안에, 나는 나의 공부법에 원칙을 세웠다.

첫째로 '반복', 둘째로 '집중'.

그 두가지를 원칙으로,
학원 수업시간에 배우는 교재를 반복하고(반복), 학원 수업시간의 내용을 철저히 복습하면서, 그 때 배운 내용들 만이라도 모두 흡수하겠다는 것(집중)이 나의 생각이었다.

다방면의 책에 손을 뻐쳐서 공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책을 배우더라도, 집중해서 제대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습득했던 공부법이 '원칙주의' 공부법이었다면, 재수하는 동안에 깨달은 공부법은 '실전주의' 공부법이었다. (두 가지 공부법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교집합과 연관성은 가지고 있다.)

난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법에 관한 책을 30권 이상 읽었고, 공부법 강의도 거의 다 찾아서 보았다.

그것에서 쌓은 데이타베이스와 내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들, 그리고 주위 친구들의 공부하는 법을 참고해서 2월 말부터, 내가 깨달은 공부법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바른공부법'을 써 나갔다.

토요일 밤에 장장 6시간에 걸쳐서 쉬지 않고 써서 바른공부법 초판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난 그 공부법을 주말마다 그것을 수정해나가고 추가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4월 초에 어느정도 틀이 잡혔다.

그리 대단한 공부법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냥 나의 공부법을 정리할 수 있어서, 나 자신이 만족했다.





4월 5일, 식목일날에, 오르비(www.orbi7.com) 학습동에 공부법을 올렸다.

공부법을 올리게 된 직접적 이유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의 길을 사람들이 걷지 않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르비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도 많기에, 바른 공부법이 많은 반대에 부딪혀 비추천을 받고 삭제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정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올린 글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만족이라는 생각에 그냥 올렸다.

샤워를 하고와서 반응을 살피기 위해 글을 보니, 리플은 30개가 넘게 있었고 추천수는 10이 넘게 올라가 있었다.

불과 20분 남짓한 시간에 생긴 일이었다. 예상 외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계속 그것을 지켜보면 공부를 못할 것 같아서, 옷을 갈아입고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서 자습을 하는 중에도 내 신경은 온통 온라인글에 쏠려있었지만 말이다.


집에 와서 글을 보니, 나도 놀랄 정도의 반응이었다.  리플수는 100개를 훌쩍 넘어있었으며, 추천수 또한 80이 넘어 있었다.



그 글은 오르비 최초로 게시된 당일날 특별학습동으로 이동한 글이 되었다.



내 아이디(로보트)에 수십통의  쪽지가 왔고, 그 쪽지에 답변을 하느라 장장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쪽지를 보내면서, 내가 이렇게 조언을 해줄 자격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내가 마치 대학생인 것처럼 썼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재수생인지 몰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약하고, 불안감에 떠는 존재인데...

그래도 내 입장에서, 최대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모두 해 주었다.

답장을 받고 감사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면서, 재수시작 처음으로 행복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쪽지 또는 이메일이 왔고, 그에 대해 정성껏 답변해 주었다.

5월달이 되고, 반 친구들과 거의 다 친해지게 되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나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염색을 했고, 친구들과 종종 노래방에도 갔다.
반 친구들끼리 모여서 축구도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공부의 끈은 놓지 않고, 일정한 공부량은 어느정도 해나갔다. 공부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많이 놀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삶을 유지해나간 시간이었다.




6월이 되고, 옆자리에 앉은 한 여자애와 친해졌다. 성격도 좋고, 얼굴도 이쁜 친구였다.
서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냥 좋았다.
주로 내가 그 친구를 놀리면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놀렸던 것이 그 친구에게 정말 큰 상처가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학원에 가는 것이 행복했고, 생각만 해도 좋았다.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재수생활의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 버렸긴 했지만 말이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집중은 되지 않았다.





6월 한달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모르는 기간이었다.

6월 모의고사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는 표현이 적절할듯 싶다.
KICE시험도, 대성모의고사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후 내가 그 친구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그뒤로 나는 말을 걸지 않았다.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공부를 해야할 때라는 마음도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7월부터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원 정문에는 '7,8월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7월달까지는 수능의 기본을 쌓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2월부터 복습하고 반복해온 학원교재를, 1학기가 끝나는 7월에 최종적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대성초이스' 수1,수2 문제집은 다 합해서 7번 정도를 다시 보았다.


풀 때도 그냥 기계적으로 풀지 않았고, 어떤 원리를 이용하고, 어떤 단원과 복합적으로 연결이 되는지 관찰하며 풀어나갔다.

계산실수로라도 틀린 문제는 무조건 틀린 문제로 간주하고 반성을 많이 했다.

지겹진 않았다.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다. 공부에서 재미를 찾은 것이다.  

이런 과정속에서 쌓은 밑바탕은 수능에서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최상위권으로 가는 길에 특별함은 없다.
우리가 알고있는 평범함, 즉 우직한 공부 노력, 반복이 바로 최상위권으로 가는 길이다.
고통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어느정도 이상의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인생의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비를 맞아야 한다.



영어와 언어는 매일 지문을 보고 분석해보았다.
급하게 많은 문제를 풀려하지 않았고, 지문을 분석하는 능력을 키워나갔다.

난 학원 수업을 그냥 듣지 않았다.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대충 듣는 수업은 아무것도 없었다. 앉아서 졸더라도 잠은 절대로 일부러 자지 않았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자습시간이 되면, 의무적으로, 그날 배웠던 것을 꼼꼼히 복습했다.
배웠던 것은 이미 아는 것이라서 지겹게 느껴졌었만, 인내심을 가지고 복습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1주일간 배운 내용을 다시한번 복습을 했다.
복습과 숙제, 어느정도의 예습을 끝내고 남는 시간에는, 내 나름대로의 계획을 실행해 나갔다.

이 나름대로의 계획이란, 예전에 배웠던 것을 반복학습하는 것이다.

매일매일의 수업내용을 복습을 하면서 나가더라도, 사람의 뇌는 시간이 지나면 옛날에 공부했던 부분을 망각해버리기 때문에, 다시한번 공부를 해둬야 그 부분을 기억할 수 있다.

학원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고작해야 10일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막판에 힘을 내기 위하여 몸을 재충전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편안히 공부했다. 평균 6시간정도 자습을 한 것 같다.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거나, 장기를 두거나, 책을 읽었다.

2005년 사상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에 축구도 했었다.  



그 때, 친구관계가 얽혀서 고민도 많이 했었다.
누구나 대인관계에 관한 고민은 했을 것이다.  난 나에게 문제점이 있는 것을 알고,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10일동안은 재수생활 중, 가장 인간적으로 살았던 기간같다.



그리고 개학을 하고 학원 2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개강날에는 고려대학교 수시모집 시험을 보러 갔다.
언어논술(요약)과 수리논술은 주말마다 틈틈히 수업을 통해서 준비를 해왔으며, 글쓰기에도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은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실력발휘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150:1 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이었으니, 사실 합격은 애시당초 힘들었다.

하지만 시험시간 동안에 나는 정말 '원없이' 쓰고싶은 말을 썼다.

최선을 다한 시험이었고, 떨어졌지만 후회는 없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합격에 대해 조금 기대를 해서, 타격이 어느정도는 있었지만 말이다.




8월 월례고사 때에는 58등을 해서 빌보드에 올라보기도 했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을 했다.






정신없는 8월달을 흘려보내고, 9월달이 되니 다들 마음을 잡고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학원에 오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작년 학교에 있었을 때는, 이맘때쯤 친구들끼리 서로 친해져서 툭하면 놀러 나가고 했었지만,


학원 사람들은 인생의 쓴 맛을 보아서 그러는지 몰라도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 또한 한번 실패를 해봤으므로, 이 기간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9월 KICE 모의평가 시험을 보고, 수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KICE문제는 역시 좋았고, 지금까지 본 모의고사 문제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연결 포인트를 잡아서 복합문제를 내고, 기발한 발상의 신유형 문제도 많았다.

특히나 언어영역 문제는 논리가 딱딱 맞아 떨어졌고, 모든 문제에 대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묻는 내용은 철저히 고등학교 과정 내에서 출제되었고, 일반 수능 문제집에서 찾을 수 있는 익숙한 문제유형들도 많았다.

수능은 알 수 없는 낯선 시험이 아니라,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시험임을 알 수 있었다.







8월부터 9월까지는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공부'를 한다는 측면에서 보다는,

'맞추는 연습'을 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싶다.

나는 유난히 실수를 많이했기 때문이다.

모의고사를 조사해보면, 틀리는 문제의 80% 이상이 실수였다.
사실, 실수라는 표현은 옳지 못한 것 같다. '착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하다.



그 실수들을 분석해본 결과, 내가 기본내용을 잘못 공부했해서 틀렸거나, 글자를 잘못 읽거나 부주의해서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실수가 실력이었다.

문제들을 풀면서, 아는 것이라도 확실히 맞추는 연습을 해나갔다. 그러면서 점점 틀리는 문제수는 줄어나갔다.




9월달 이후로의 시간은 정말 후회없이 보냈다.  

앞으로 수능때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수능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고,  이 시간을 후회없이 보내고 싶다'

난 모든 찰나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컴퓨터는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하지 않았고, 학원에 다녀오면 취약점이었던 영어듣기를 했다.

매일을 규칙적으로 살았다. 자율학습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그러던 중, 10월 모의고사 전날 감기에 걸렸다.

10월 모의고사 때는 콧물과 휴지의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문제가 나를 풀었는지, 내가 문제를 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당연히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불안했다.



수능도 이렇게 되면 어떻하나....







그러나 결국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지 컨디션 때문이라 생각했다.





모의고사 성적은 한편으로는 신경을 써야하고, 한편으로는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전자는, 모의고사를 잘 보지 못한 이유가 현재까지의 자신의 나태함 때문이라면 , 이를 채찍의 방편으로 여기라는 뜻이다.


후자는, 모의고사 성적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자꾸 바꾸어 나가지 말라는 말이다.
중간에 계획을 관두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도 못한다.

모의고사가 잘 나왔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7월달까지 나의 물리성적은 30점대 초반이었다.

수학 또한 80점을 웃돌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난 나를 믿고, 모의고사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해서 계획을 실행해나가서 수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10월달 부터는 실전연습을 해나갔다.  

반에서 친한 누나와 같이 시간을 재면서 실전모의고사를 풀어나갔다.

음료수 내기를 했는데, 먹을 것이 걸려있으니 긴장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시간이 다되면, 서로 바꿔서 채점하면서,

이긴 사람은 승리자의 기쁨을 누렸고 진 사람은 패배의 쓰라림을 느꼈다.



그러한 실전 연습의 과정에서, 시험 집중력을 키워나갔다.





학생들은 시험을 보게 되면, 저절로 집중을 하게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능시험같은 중요한 시험 때에도, 집중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은 많다.

시험 집중력 또한 연습을 통해서 키워나가야 한다.  

서로 모의고사를 푸는 것은, 정말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그 누나와는 지금도 절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수능이 가까워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해한다. 전국1등이라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불안의 정도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지, 수능이 가까워지면 다들 불안해한다.



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실전모의고사를 풀어서 점수가 약간 삐끗하더라도 난 불안해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면적인 나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난 자기암시를 걸었다.


'난 수능을 잘본다'

'난 할 수 있다'

'이번엔 잘본다'

'난 실전에 강한 사람이다'


이러한 어구를 일기장에 매일 써나갔고, 틈틈히 쉬는 시간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면서 불안감은 서서히 내 마음에서 멀어졌고,

자신감이란 것이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11월 모의고사 또한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성적은 남은 기간동안 나를 견고하게 다뤄준 '죽비'가 되었다.










시험이 2주정도 남은 어느날, 학원의 언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시험 못본 것을 자책하지 말아라. 앞으로 2주는 너희들의 모든 것이 달린 시간이다.

남은 2주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목숨을 걸고 싸워라."  






이 말에 나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어쩌면 이번 수능에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선생님 덕분일지도 모른다.



사실 남은 2주는 다들 어느정도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해이해지기 쉬운 때이다.

친구들은 많이 친해져서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제는 컨디션 관리할 때라고 하면서 공부에는 손을 놓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시험을 보러 집으로 내려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대성학원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난 이 때 마지막 정리에 박차를 가했다. 1분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정리는, 이상하게도 정리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들 투성이였다.

이 부분을 하면 저 부분이 모르는 것 같고, 그 부분을 공부하면 다시 모르는 것이 생겨났다.




주로 주말에는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쭉 보았다.

역시 세부적인 부분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이 많았다.



평일에는 모의고사를 풀어나가면서,

내가 틀렸거나, 풀면서 애매했던 문제들을 확인하고,

그 해당단원에 찾아가서 다시 확인을 했다.  






마지막 2주는 그렇게 정말 정신없이 공부를 했다.






컨디션 관리는 특별히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해오던대로 하는 것이 컨디션 관리라 생각한다.

괜히 특별하게 잠을 더 자는 것은 생활 리듬을 깨버릴 수 있다.

수능 날짜가 다가오더라도, 그냥 난 평상시의 흐름을 유지하고 공부를 해나갔다.

주말에도 하루종일 학원에서 자습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 수능이 다음날로 다가왔다.











11.22. 화요일

6시 30분 정도에 잠에서 깨어났다.

일단 영어의 감을 살리기 위해,  

9월 모의평가 외국어 영역 지문을 다시보았다.

모의평가 지문은 역시 Introduction, Topic, Support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수능은 이렇게 출제되는구나....하는 마인드를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문제가 깔끔하고 좋았다. 답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애매한 문제는 없었다.  

10시부터 학교에서 수험표 발급이 있기에 9시 50분정도에 학교로 나갔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1년만에 본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나서 깨달은것 하나. 다들 늙어있었다.


그들의 노화를 슬퍼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늙어있었다.



아아, 젊음은 거기 남아있어라.

망가진 피부와 하며 언발란스한 나의 헤어스타일
(사실, 수능보기 몇일전에 앞머리가 자꾸 신경쓰여서 앞머리만 잘랐다.)




1년간의 재수생활은 모두에게 힘겨웠던 것이다.






수험표를 발급받는, 진로상담실로 가보니 그곳은 n수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단, n은 2이상의 자연수이다. )

그 많은 인파속에서 힘들게 수험표 교환권을 내고 가까스로 수험표와 수능지침안내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수능 수험표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작년과 똑같은 모양의, 사진만 바뀐 수험표. 바뀐것이 없었다.

더이상 익숙해지면 안되는데...이것이 마지막이길 바랬다.




학교는 대일고로 배정되었다. 대일고라면 우리집 바로 옆이라서 좋아했다. 이제 내일이다.


내일이면 수능준비도 끝인 것이다.

내일 수능이 끝나면, TV도 마음껏 볼 수 있고 잠도 마음껏 잘 수 있다.  

더이상 좁디좁은 강의실에 앉아서 졸음을 참으며 필기를 해나갈 필요도 없다.

예비소집을 끝내고 와서 작년 언어영역 문제를 풀어봤다. 문제들이 논리가 있고 답이 딱딱 떨어졌다.

그리고 과학탐구를 영역별로 모의고사를 한회씩 풀어봤다. 수능을 보는 것같이 집중해서 풀어봤다.

혹자는 수능 전에는 모의고사를 풀지 말라고 하는데, 이는 모의고사 점수에 영향을 받아 심리가 불안해질 것을 염려해서 한 말이다.

점수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면 풀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여태까지 배웠던 것들을 쭉 읽어보고, 정리노트도 읽어나갔다.

8시 반정도가 되니 봐야할 것을 모두 보게 되었다.

2006년 수능을 대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냥 침대에 앉아서 1시간을 보냈다.

뭔 생각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나서 경건히 몸을 씻고 잘 준비를 했다. 10시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던것 같다.


그리고 11시 45분에 일어났다. 1시간 45분 낮잠(?)을 잔 셈이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안된다. 자야되는데.....


누워서 30분동안 자려고 노력했다. 눈은 말똥말똥 깨어있었다.




어머니께서 잠을 재우기 위해서 신경안정제와 포도주를 먹었다.
포도주를 먹으니 몸이 뜨거워졌다. 얼굴도 뜨거워졌다. 누가 포도주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 했던가.

혈액순환이 너무 좋아져서 뇌혈압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몸이 완전 흥분이 되었고 잠은 안오지 미칠 지경이었다.  






난 떨고 있었다.

별 생각을 다했다.

이러다가 잠 못보고 시험장에 가서 망치는것 아닌가. 삼수하는것 아닌가.  




정말 많이참고 열심히 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난,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전 이번 시험에 대비해 최선을 다해왔고

평생동안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적이 없습니다.










지난 1년간, 후회는 없었습니다.








제 능력 안에서는 최선을 다할테니





제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는,...




저의 보통의 실력만 발휘하게 해줄

그러한 여건만 마련해주십시오.  








부디 부탁합니다.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한번만...

딱 한번만..

제발 이번만이라도






저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난 일생동안 가장 절실하고도 간절한


기도를 했다.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깬 상태였는지.


그러한 반 혼수상태로,

나는 생애에서 마지막이 될 수능날의 아침을 기다렸다.









11.23.수요일.

6시 반정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을 푹 잔지는 못했지만, 정신은 맑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대일고등학교로 걸어갔다.

산책 나가는 기분으로 뒤쪽 산길을 통해서 걸어갔다.

내가 재수하는 동안에 가장 고생하신 사람들은 바로 나의 가족들이었다.



정말 말 못할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것이다.

장남인 아들이 재수하면서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그러한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실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중에 난 대일고 앞에 와 있었다.

시험을 잘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부모님께 다지고, 난 그렇게 홀로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인생은 고독하다.

결국은 혼자다.

인생은 결국 혼자인 것이다.

혼자 절정의 끝에서 싸워야 할 순간이 있다.

내가 결정해야할 그런 순간이 있다.


이번엔 아니다.

이번엔 잘본다.

반드시 잘본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운명이란건 정해져 있지 않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적 개념일 뿐이다.

고로 미래는 없다. 현재만 있을 뿐이다.

현재만 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1교시 종이 울리고 언어영역이 시작되었다.

듣기문제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문들을 쭉 훑어보았다.

대부분 아는 지문이라서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이상하게 너무 쉬웠다.

쉬우니 나는 오히려 불안해했다. 어려워야지 변별력이 있는데,.. 마지막에 2문제가 남았다.

답은 결정해놨는데 왠지 불안했다.

종료 1분을 남기고 2문제를 모두 고쳤는데, 결과적으로는 둘다 틀려버렸다.


그순간, 내 언어영역 백분위는 폭락한 것이다.

1교시가 끝나고 다들 쉬웠다는 소리를 했다.




"30분 남았다"
"이런적 처음이다"

초조했다.





2교시 수리영역.

9월 모의평가 때 수리가형과 나형의 표준점수 차이가 많이 났으므로, 가형은 더욱 어렵게 낼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다른 아이들은 쉬운 언어영역 때문에 조금 들떠있는 것 같았다.

수리영역을 한 7번쯤 풀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이건 내가 알던 수리영역이 아니었다. 어려웠다.

잠시 잘못 생각하면 완전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문제들이 많았다.

그와 동시에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재학생들은 죽었구나.'



주관식으로 넘어가니까 재수를 한 나도 난생 처음보는 문제들이 나왔다.

그래도 각 단원의 개념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접근하니 풀렸다.  
 

미분과 적분에서는 주관식 30번을 결국 못풀었다.


찍으려니까 참 암담했다. 12로 찍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답은 11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문제가 정말로 아깝다. 좀더 침착했어야 하는건데........




수리영역이 끝나니 다들 죽을듯한 인상들이었다. 학생들이 밥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난 좌절을 해봤자 지금은 늦었다는 생각에, 일단 밥을 재빨리 먹고 잠부터 자기 위해서 자리에 누었다.

자려고 하는 도중에 계속 수리영역 문제가 생각나고 불안했다.



난 나를 믿었다.


"어려웠지만, 잘했을 것을 믿는다. 점수여, 부탁한다."




잠을 자진 못했지만, 그래도 힘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3교시 외국어 영역은 듣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듣기.

1년동안 그렇게 연습해왔던 듣기.

작년 그 악몽의 여자성우가 생각이났다.

처음에 잘 나가다가, 9번정도를 가는데 긴장때문에 숫자계산 부분을 못들었다.

1550달런가 1400달런가



초조해졌다. 땀이 줄줄 흘렀다. 한문제에 대학이 몇개가 달려있는데........




하지만 그 순간 '그래. 이건 버리고 남은거나 잘하자' 라고 생각하고 다시 집중에 들어갔다.

듣기를 다하고 지문을 읽어나갔다.

9월 평가원과 체감난이도가 비슷했다.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다 풀고 시간이 15분정도 남았다. 듣기 9번은 4번에 있는 것밖에 듣지 못했기에, 4번으로 찍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은 정답이었다.



나이스.
무난하게 3교시가 끝났다.  










 

 



이제 과탐만 보면 끝난다.

과탐만 보면 끝이다.

이제 수능이 끝나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친구를 만났다.

어찌 그리 반가웠던지..

지난 재수생활을 회고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생많았다.. "

웃으면서 서로 잘보라고 하면서 4교시 준비를 위해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이젠 허리가 아파왔다.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과학탐구를 풀어나갔다.


물리1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 푸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능 물리는 역시 계산은 하나도 없었다.  

원리, 이해만 묻는 문제였다.



화학1은 거의 다 교과서의 소재가 나와서 놀랐다.

수능 2주전에 화1 교과서를 꼼꼼히 살펴본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에 3점짜리 한 문제를 고쳤는데, 이는 보기좋게 틀려버렸다.





생물1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뒀기에, 편하게 풀었다.  

생식기 문제는 당황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라 틀렸지만 나머지는 다 맞출 수 있었다.

 




화학2는 문제집엔 없지만, 교과서에 있는 실험이나 소재같은 것들이 많이 나왔다.

난이도는 예상했던 대로 높았다. 역대 화2 문제중 난이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틀린 것을 발견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고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화학2 20번의 마킹을 끝냤을 때의 홀가분함과 해방감이란.

작년에 끝날 때 느낀 그 암울함과 대조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끝났구나.....




학교를 나서는 길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너무 기뻐서 부둥켜 안았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한 적은 없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렇게 인내하면서 살아본 적도 없었다.




그 시간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고,

지나가는 중 만나는 사소한 모든 의미들은, 그 순간에 맞닿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남모르게 혼자 삭혀야 했던 정말 힘들었던 시간들은,

그 지나간 시간들은

이제 재수생의 비참한 현실로 각인되는 기억이 아닌 내 꿈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추억으로 남겨진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


 

 

 

 


 

 

 


 

 

그렇게 수능이 끝난 후,

원서는 인하대학교 의예과, 서울대 전기컴퓨터 공학부, 한림대학교 의예과, KAIST를 썼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가군에 경희대학교 한의예과나 한양대학교 의예과를 넣었으면 합격할 수 있던 점수였다.

(두곳 다 점수가 예상처럼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래부터 목표는 서울대 전기공학부였기 때문에, 다른 곳은 위험하게 원서를 쓰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면접준비는 약 2주전부터 했다.


학원을 다니다가, 수업이 맞지 않아서 혼자 공부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고, 도서관에 가서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했다.

화학은 하이탑으로 공부를 했고, 수학은 심층면접 문제집을 사서 공부를 했다.

수학은 포항공대와 서울대의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면접은 1월 18일에 있었다.

점수가 어느정도 남았기 때문에, 면접은 평균적으로만 봐도 붙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큰 부담은 없었다.







2006년 1월 18일 날이 밝았다.

오전은 화학, 오후는 수학이었다. 화학 순번은 마지막에서 세 번째였다.

같은 학원 친구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목에 자신이 누군지를 알리는 목걸이(?)를 걸고, 1조부터 10조가 함께 나가서 면접을 봤다.

잠을 4시간밖에 자지 못했기 때문에, 잠을 보충하려고 1시간 정도 자리에 누워있었다.

긴장이 돼서 잠이 안오자, 그냥 집에서 갖고온 하이탑 3권을 봤다.

3시간 정도 기다린 다음에 내 차례가 왔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긴장감이 거의 다 풀린 상태였지만, 목걸이를 걸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난 할 수 있다. 난 서울대학교에 합격한다.’하고 자기암시를 하면서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장이 따로 마련되어있을줄 알았는데, 복도에 있는 책상에서 푸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황당했다.


책상에 앉고 시험지를 받고, 시험지와 대면한 순간. 난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화학 면접문제인데 ‘시’가 나와있었던 것이다. 무슨 언어영역도 아니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시를 읽어나가는 도중, 별 거 아닌 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1번문제를 풀어나가니,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용어가 생소했다.

하지만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5번 문제까지 막힘없이 잘 나가다가, 반응식을 완성시키는 대목에서 헷갈려서, 시간을 모두 소모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면접실로 들어갔다. 교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나는 내가 푼 것은 최대한 빠르게 설명했다.


힌트를 얻고, 푸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3분정도만에 내가 푼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 있었고, 5번문제는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풀 수 있었다.


6번문제는 시간이 모자라서 손도 대지 못했다.


아쉬웠다.

끝나고 나와보니,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농생대에 지원한 누나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전화를 해보니, 이미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묘한 실망감(?)을 느끼며 공대 식당에서 밥을 혼자 먹었다.


기독교 동아리 선배님께서 길을 안내해 주셔서 고마웠다.




밥은 혼자 먹고 , 못푼 문제는 자꾸 생각나고...머리가 복잡했다.

거의 좌절모드였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화학 문제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괜찮아. 평균정도는 봤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다시 마음을 잡았다.

점심을 다 먹고, 학부모 대기실의 빈 자리에 가서 낮잠을 잤다.

옆에서 떠들어서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어느정도의 휴식은 취할 수 있었다.


수학 시간이 되자, 난 대기실로 이동했다.


전컴지원자 240명을 두 강의실에 나눴는데, 그 중에 여자는 4명밖에 없었다.

공대의 암울함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 암울함을 더하는 것은, 나의 면접 순번이었다.

뒤에서 4번째였다.

1시부터 6시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린 것 같다.

1시간 정도 기다리다 못해 옆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옆 친구는 강남대성학원 출신이었고,

우리는 통하는 것이 많아서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얘기를 하면서 수학 기출문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시간은 지나갔다.

내 차례가 왔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지칠대로 지쳐있었지만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시험장으로 가서 문제지를 받자마자 문제를 풀어나갔다.


1-1과 1-2는 익숙한 유형의 문제라서 쉽게 풀 수 있었다.


2번 문제는 작은 문제가 4번까지 있었는데, 상당히 어려웠다.

원 안에서 작은 원이 도는 문제였는데, 상당히 어려웠다.

2-1은 그 자취가 (cos^3x, sin^3x)인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3x의 각으로 도는 것까지는 구했는데, 그 이상은 더 이상 어떻게 접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10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아..떨어지고 마는 것인가. 이대로는 안되는데.


2-1은 그냥 넘겨버렸다. 2-2부터 봤다.


곡선의 개형을 그리라는 문제였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얼핏 본것 같아서 생각나는 대로 그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은 정답이었다. 2-3과 2-4는 대성학원 수학 조두식 선생님께서 한번 풀어주셨던 문제였다.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렇게 2-1을 풀지 못한 채 면접실로 향했다.

역시 빠른 속도로 내가 푼 문제를 설명을 했다.

교수님은 2-1을 다시한번 풀어보라고 하셨고, 1-1과 1-2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그 부분 외에서는 만족하게 설명한 듯 했다.

하지만 난 끝까지 그 못풀거나 틀린 부분의 답을 찾지 못했고, 제한시간이 다 돼서 나가야만 했다.


만족할 정도로 면접을 보진 못해서 마음이 찝찝하긴 했지만, 그래도 ‘평균정도는 봤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오르비에 가서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니, 거의 다 상황이 나와 마찬가지였다.

2-1을 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험 문제가 어려웠던 것이다.


내 점수가 165.94였는데, 이는 1배수 컷보다 약간 위의 점수로 추정된다.


면접을 중간 이상만 한다면 합격을 기대할만한 점수였다.

잘만 하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월 2일. 서울대 발표날.

성당 사람들과 같이 피정의 집에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 사용은 금지되어 있었다.

저녁 5시 30분쯤, 몰래 아버지께 문자를 보내서 결과를 여쭤보았다.

30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떨어져서 전화가 안오는 걸까.



정말 떨어지고 만 것일까...면접 준비좀 열심히 할걸.



아버지는 얼마나 상심하실까.



그 30분간은 나에게 100만년처럼 느껴졌다.  


100만년이 막 지났을 즈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어~ 축하해요~서울대생~"

아버지의 기쁨에 찬 목소리였다.




난 확실하냐며 아버지께 재차 여쭤봤고, 아버지께서는 확언의 대답을 해 주셨다.


너무 기뻤다. 날아갈듯이 기뻤다.


성당에 있는, 같은 고등학교 후배와 껴안고 합격의 기쁨을 나눴다.


하지만 그곳은 피정의 집이기 때문에, 남들 다 보이는 곳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일.


합격의 기쁨은 잠시, 다시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난 속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을 억제하기에 바빴다.
















3월 9일의 재수일기와 같은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련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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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를  공부의신 이라 부른다. 나는 공신이라는 대학생 교육 봉사단체를 만들었고 공신닷컴이라는 회원수 20만 명의 공부법, 동기 부여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공신은 대한민국 최고의 봉사단체로 청와대의 매년 초대를 받고 있으며 공신닷컴은 정보통신윤리위윈회 청소년 권장 사이트로 등재된 서울형 사회적 기업이다.

 

공신 이후로 공부법이란장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난 MBC에서 공부법 프로 MC를 맡으며 KBS 공부의신 드라마 공부법 자문으로 대본 작업에 참여 했다. 내가 썼던 공부법 책들은 중국과 대만에 수출되고 있고 1 365일 한 번이라도 만나 보려는 학생 학부모님이 줄을 섰다. 과연 얼마나 잘난 인간 이길래?왕도 아니고 황제도 아니고 신이라 불리는 것일까? 오늘 난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길 솔직히 해보려 한다. 이런 이야기, 가까운 공신 들에게도 해본 적이없다. 유쾌한 기억보다는 힘든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인생의 암흑기였다. 경상북도 점촌이란 시골 마을에 살던 나는 부모님을 따라서울 화곡동에 전학을 오게 됐다. 새로 온 집은 시장 근처였는데, 논밭만 있던 곳에 살다 차들과 사람, 집들로 빼곡히 들어찬 동네에 오게 되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교에 간 첫날부터 나는 완전히 쫄아 친구들에게 자기소개조차 하지 못했다. 난 원래 내성적이고 겁이 많았다. 덩치도 작았다. 그당시 주눅이 들기도 했었고 조금은 깍쟁이 같은 서울 친구을 만나니 말을 꺼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붙여진 내 별명은촌놈, 혹은 더러맨이었다. 까무잡잡하고 팔꿈치에는때가 껴있어서 더럽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굉장히도 없어 보였던 모양이다. 만만해 보였는 지 나중엔 싸움 잘하는 친구들에게 맞기 시작했다. 맞는 덴 별 이유가 없었다.  난 겁이 나서 화장실을 못 갔고 다른 건물 화장실을 쓸 때가 많았지만 그것도 왠지 쪽팔려서 못갈 때가 많았다.  어쩌다 급할 땐 쉬는 시간에 집까지 뛰어 갔다. 물론 수업 시간에 맞춰 들어올 수 없었고 선생님께서 뭐하다 왔냐 물어보시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집까지 부리나케 뛰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데 그건 지금이라서 그럴 수 있을 뿐이다. 그 당시엔 정말 미래가 없어 보였다. 학교 폭력이란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을 절대 심각성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학생이 된 뒤로 일산으로전학을 갔다. 일산은 전에 살던 동네완 달리 싸움도 적고 친구들도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 스스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소극적이고 찌질했고 뭐하나 똑부러지게 하는 게 없었다. 별 존재감도 없어 학교에 왔는지 안왔는 지 잘 모를 학생이었다. 2 때 였다. 어느 날 반에서 가장 키크고 싸움 잘하는 친구와 눈이 교실에서 마주쳤다. 마침 그 친구는 담배로끊어 오른 가래를 바닥에 뱉으려던 찰나였는데 눈이 마주친 것이었고 그 친구는 입안에 한 가득 담겨 있던 침을 그대로 나에게 뱉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내얼굴로 그 침이 정확히 날아 왔고, 하필이면 그 순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얼굴에 침을 뱉다니, 수업이고 뭐고 달려들어 주먹이라도 날렸어야 했다. 하지만 용기라곤 이제껏 살면서 가져보지도못한 나였다. 나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침을 손으로 닦고 그 상태 그대로 한 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대들어 볼 생각조차 못했고 선생님께는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말할 용기 조차도 없었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썩어 문들어지는 침 냄새를 지우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람 침이 이렇게 고약한 건 지는 그 때 처음 알았다.내 스스로가 불쌍했고 이런 놈을 자식이라고 애지 중지 하는 부모님이 불쌍했다. 이런식으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마저 했다. 난 너무도 달라지고 싶었다.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었고 단 하루라도 친구들이 우러러 보는 존재가 되보고 싶었다. 그 순간 공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데신기하게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번져나갔다. 제대로 한 번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왜 하필 공부였냐? 공부를 잘하면 아무리 병신이고 찌질해도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3올라가기 전 방학, 공부라는 걸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해봤다.오기도 품었고 처음으로 독서실을 끊었는데 조용한 게 공부가 꽤나 잘 됐다. 학교와좀 먼 곳이라 친구들도 없었고 대부분 대학생, 직장인들만 있는 곳이었다. 가끔씩  독서실 근처 오락실가는 것 빼곤 혼자서 공부를 했다. 물론 한 번 가 앉으면 끝판까지 가니 좀 문제긴 했지만 그것 빼면 정말공부만 했다.  어떨 땐 시간을 아끼려고점심시간에 독서실 계단에서 햄버거를 사먹거나 과자 한 봉지로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보람찼다.뭔가 내가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이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중3 첫 시험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반에서 2등을 했다. 반 배치 등수와는 다르게 생각지도 못한 학생이 떠오르니까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칭찬을 받게 되니까 교무실에 가는 게 즐거울 정도였다.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께 좋은 인상을주기도 하고 또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으니 학교 가는 게 신이 났다.

 

3내내 나는 그 기세를 이어가 우리 동네에서 공부 좀 한다는 공립고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기특했고 대만족이었다. 이제 노는 일만 남았다. 남들 고등학교 예습한다고 할 때 난 정말 신나게 놀았고 입학 후엔 학교생활에 적응도 잘해서 친구들과도 많이 사귀고 학생회,동아리 활동을 즐겼다. 학교 다니는 게 행복했다.

 

다만 약간의 고민은 공부였다. 중학교 공부는 벼락치기로 하면 거의 한대로 나왔는데 고등학교 공부는 어렵기도 어려웠고 나름 열심히 해도달라지는 게 없었다. 내신은 범위가 너무 많았고 모의고사는 정말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진 빠지게 모의고사 시험을 보긴 보는 데 봐도 결과는 형편 없었다. 풀 때는 맞는 것 같은데막상 채점하면 영 딴판이었다. 1, 2가 끝나가는데도 반에서 중간 정도, 그 상태에서 달라지는 게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은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성적은 잘 나왔다. 나와는 반대인 아이들이었다.

 

답답한 건 친구들은 나를거의1등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야자시간도 땡땡이 치지 않고 수업시간도 절대 조는 일 없이수업을 꼿꼿이 들으니 그럴만도 했다. 수업시간에 항상 깨어있는 나를 보고 내 필기를 빌려가는 친구들도 많았지만성적은 대부분 그 아이들이 더 좋았다. 축하는 해줬지만 힘이 빠졌다. 급기야는 한 과목에서 50점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당시 내신 부풀리기로 100점 받는 애들이 수두룩 했는데 나는 공부를 해도 그냥 그 자리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역시나는 머리가 나빠. 부모님께서  못해줘서 그래. 우리 집안엔 왜 대학 나온 사람한 명 없는 거지. 난 왜 물어볼 형도 없지. 우리 집 차는 왜 고작 프라이드에 그것도 중고차를 타고 다니나.  별별 탓을 다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싫고 미웠다. 부모님과말 섞는 것 자체가 싫었고 집에 오면 짜증을 안내는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없이 좌절하고있을 무렵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내가 형 같은 사람이 없었던 것이 답답했던 만큼 동생에겐내가 겪은 막막함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날부터 노트를 마련해서 공부하면서 도움될 만한 내용들을 상세히 적었다. 동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였다. 짐작했겠지만난 다른 건 몰라도 어릴 적부터 동생 하나는 끔찍히 아끼는 형이었다.

 

과목별 공부법, 공부할 때 태도 마음가짐부터 자극받을 수 있는 문구까지. 항상 이노트가 옆에 있었는데 나중엔 이게 습관이 되어 내 나름대로 이런 저런 방법들을 시도 해보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나가게 되었다. 이 노트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에게 내가 해줄 수 잇는 가장 좋은 선물 중에 하나일 꺼라 생각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효율적인방법들은 모두 적었다. 사실 그 당시엔 그게 공부법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지도몰랐다. 공신닷컴 같은 사이트도 없으니 그저 전부 내가 직접 해보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식이었다.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이런 시도를 하고 방법들을 찾아가며 나에게맞는 공부법을 찾게 된 이후로 공부가 잘 되기 시작했다. 전보다 23배 이상 공부가 잘 됨을 느꼈다.

 

가끔은 머리가 팽팽 돌며  풀가동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였다.내가 왜 진작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그 후회 때문에라도더 공부해야 했다. 3 내내 난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공부할 수 있을 지 항상 생각했고 실천했다. 시험 볼 때마다 적용해보고 반성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고다음 시험에 적용해 나갔다.

 

어쩌면 나는 이 노트덕분에내가 원하는 대학에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뿐 만 아니라 그 노트에 적힌 공부법덕분에 내 동생도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나는 줄곧 교육 봉사를 해왔는데,봉사를 좋아하거나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같이 힘들어하고 헤매는 학생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제대 이후 나는 내가학생들에게 조언해줬던 공부법과 동기부여에 대한 조언을 모든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공부법이란 것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란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공부법 강의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자 했는데 사이트 이름을 고민하다가 누구나 공부를 신나게하길 바라는 뜻으로 공신이라 지었다. 처음엔 공부의 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진절나게도 힘들었기 때문에후배들은 이 공부법을 통해 공부를 신나게하길 바라는 뜻이었다.

 

동생과 같이 쓰던 기숙사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공신은 이후 공부의 신으로 와전되었고 지금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1:1로 멘토링을 하고 학습법 컨텐츠와 동기부여 컨텐츠를 전파하는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밤낮으로뛰고 있다. 2011년이 들어서며 공신에서 활동한 대학생이 300명이넘어 섰다. 공신에서 도움을 받은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공신이 되어 그 선배와 함께 교육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피할 수없는 고통이면 차라리 그것을 즐겨라.’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니까.’  해병대에서 뼈저리게 배운 이 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중에 하나다. 사람을 가장 크게 성장시키는 것은 안정이라기 보다 역경이라는 뜻이다. 아직 살아온 날이 길지도 않지만 돌이켜 보니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나마 지금 내가있기 까지 나를 잘되게 해주었던 것은 사교육도 아니었고 잘난 머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덕분이 었고 열심히 해도 나오지 않던성적 때문이었다.

 

 

열등하기 짝이 없는 나도공신이 되지 않았는가? 여러분이 지금부터 마음을 먹고 제대로 시작한다면 아마여러분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몇 배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는가?일단 반드시 뭔가를 해내겠다는 마음부터 먹어라.

 

물론 지금 여러분에게많은 고난과 좌절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겪었던 것 이상으로 혹은 비슷한 어려움을느낄 것이며 공부라는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게도 단 한순간도 공부란 게 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는 바로 그것이, 그 고난들이 결국 여러분을 성장하게 하는 가장 큰 보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부디 좌절하지않길 바란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가져라. 고작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 입시 따위로 좌절하긴 여러분이 너무 아깝다. 어린 시절 가졌던꿈을 다시 꺼내고 세계를 호령할 인물이 될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하자. 여러분은 절대 나약하지 않고 또한 이겨낼 힘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엔 공신 선배들이 함께할 것이니까. 최소한, 이 찌질했던 공신 선배 한 명 만큼은 여러분을 믿고 박수를 쳐 줄 것이니까.

 


자신 있으신가요?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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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남의 눈치만 보며 20년을 산 내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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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현수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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